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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공학 129

[요재지이] 의좋은 형제, 눌과 성

하남에 사는 장씨는 원래 산동 사람이었는데, 명 말기에 이르러 청 나라 군대가 그의 아내를 잡아가자 산동을 떠나 하남에 자리잡게 되었다. 하남에서 새장가를 든 장씨는 눌이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아들을 낳은 직후 아내가 죽어버리자 세번째 아내를 얻어 성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성의 어머니는 성질이 포악해서 전부인의 아들인 눌을 늘 구박했는데, 매일같이 지게 한 가득 나무를 해오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호된 꾸지람과 함께 밥을 주지 않았다. 이것을 안 성이 어머니에게 남몰래 그러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계모의 본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어느날 갑작스런 비바람에 눌은 나무를 별로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고, 저녁을 굶고 주린 배를 붙잡고 누워있자니 동생 성이 다가왔다. "어디 아파?" "아니, 그냥..

[요재지이] 수망초

수망초는 덩굴과에 속하는 독초인데 보라색 꽃이 폈다. (투구꽃이랑 비슷하군요.) 사람이 수망초를 먹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렇게 죽은 사람을 수망귀라고 불렀다. 수망귀는 저승으로 가서 윤회를 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 되는데,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수망초를 먹고 죽게 만들어야만 했다. 축생은 초 지방 사람이었는데, 친구인 아무개를 찾아가던 도중 목이 말라 찻집에 들렀다. 차를 한잔 시키니 노파가 차를 내어왔는데, 아무래도 냄새가 이상해서 입에 대지도 않고 찻집을 떠나려는데 노파가 다른 쪽을 보며 말했다. "삼낭아 좀 더 좋은 차를 한잔 가져오거라." 그러자 잠시 후 열다섯살쯤 되어보이는 소녀가 찻잔을 받쳐 나타났는데, 역시나 천하일색이었다. 여색에 취했으니 그녀가 가져다준 차향..

[요재지이] 천녀유혼

영채신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품행이 단정한 사람이어서 "내 평생 여자는 아내뿐이다." 라며 사람들에게 공언하곤 했다. 어느날 영채신은 금화성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묵을 곳을 찾았지만 성 안의 숙소는 방값이 너무나 비싸 성 북쪽에 있는 빈 절에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문이 잠긴 탓에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날이 저물고서야 한 사람이 나타났다. 영채신은 얼른 인사를 하며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는데 "저도 여행중인 사람입니다. 이곳은 주인이 없어 썰렁한 절이니 함께 지내주시면 저도 감사한 일이죠. 저는 연생이라 합니다." 영채신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낯선 탓인지 좀처럼 남을 이루지 못했는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창틈으로 쳐다보니, 한 노파와 여자 하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재지이] 천의무봉과 같은 육 판관의 의술

능양현에 주이단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성격이 호탕했지만 머리가 썩 좋지는 않았는지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도 도통 성과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한 친구 왈- "자네는 담력이 쎄다고 늘 자랑질인데- 오늘 한밤중에 시왕전에 가서 왼쪽 복도에 있는 판관의 신상을 가져온다면 내 인정해주지." 다른 친구들도 모두 동의하며 가져오기만 하면 돈을 모아 한턱내겠다고 했다. 시왕전의 판관 상은 워낙에 흉악한데다 밤이 되면 실제로 그가 저승의 죄인들을 고문하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주이단은 개의치 않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주이단이 큰 소리를 내며 나타났는데, 과연 시왕전의 판관을 들쳐업고 온 것이었다. 판관을 본 친구들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

[요재지이] 화피 - 그림을 그린 가죽

왕생이란 사람이 길을 가고 있는데, 한 여자가 혼자서 보따리를 들고 바쁜 걸음을 걷는 것을 보았다. 보따리가 무거워보여 도와줄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여자는 열 다섯 살쯤 되어보이는 예쁜 아가씨였다. 첫눈에 반한 왕생이 물었다. "어인 일로 동이 트기도 전에 혼자서 길을 재촉하는 겁니까?" "어차피 도와주시지도 못할 것을 뭐하러 물으십니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할 테니 말해보시요." "저희 부모가 저를 부잣집에 팔아넙겼는데, 본부인이 질투가 심해 저를 하루종일 괴롭히는 바람에 도망치는 중입니다." "어디로 가려구요?" "집 나와 도망치는 사람에게 목적지가 있겠습니까?" "그럼 우리집으로 갑시다." 왕생의 권유를 여자가 흔쾌히 받아들이자, 왕생은 그길로 여자를 자기집 서재에 숨겨두..

[요재지이] 성생과 주생

성생과 주생은 동문 수학하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성생은 가난해서 늘 주생에게 의지했고, 나이도 주생이 더 많이 성생은 그를 형으로 모시며 우애를 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주생은 아내가 죽자 나이 어린 여자를 후처로 맞아들였는데, 성생은 너무 어린 형수를 멀리하며 가능한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루는 성생이 주생의 집에 들렸는데, 마침 주생의 집 마름이 관가에 끌려가 매질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인즉슨 주생의 마름이 일대 세도가인 황씨 집안의 소치기에게 주씨의 밭에 침범했다며 욕을 한 것. "황가는 원래 우리 할아버지의 노복이었는데, 벼슬 자리에 올랐다고 어찌 이리 함부로 한단 말인가?" 퍼 불같이 화를 낸 주생이 당장 황씨의 집으로 쫓아가려하자 성생이 그를 말리며 말했다. "도둑놈들이 판치는 세..

[요재지이] 죽어서도 은혜를 갚은 섭생

회양 땅에 섭씨 성을 가진 서생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남달랐지만 관운이 없는 탓인지 이상하게도 시험만 보면 떨어져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따. 회양현의 현령으로 부임한 정승학은 섭생의 소문을 듣고 그를 초대했는데, 이야기를 나누어보고는 아주 기뻐하며 그의 후원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정승학은 관아에서 학자금을 받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섭생의 생계가 궁핍해지지 않도록 수시로 돈과 양식을 대주기까지 했다. 정승학의 후원에 힘입어 섭생은 드디어 과거에 응했는데, 정승학이 그의 답안지를 구해보니 단연 일등감이었다. 하지만 섭생의 부족한 관운 탓인지 이번에도 합격자 명단에서 빠져버렸다. 자신을 밀어준 후원자에게 실망만 안겼다는 자괴감에 섭생은 결국 병이 들어 시들시들 앓아누워버렸다. 정승학 역시 윗..

[요재지이] 점쟁이와 우공

우공은 의협심이 강하고 무술 실력이 뛰어났는데, 하루는 하인이 갑자기 돌림병에 걸려 위독해졌다. 하인을 걱정한 우공은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하인의 안위를 물으려 했는데, "하인의 병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신 겁니까?" 하며 점쟁이가 먼저 물어왔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우공을 향해 점쟁이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말했다. "하인은 괜찮겠지만 당신이 문제입니다. 삼일 뒤에 죽을 운명이군요." 신묘했던 점쟁이라 우공은 더 깜짝 놀랐는데, 그 기색을 살핀 점쟁이가 덧붙였다. "열 냥만 주시면 액땜을 해드리겠습니다." 점쟁이의 말에 우공은 곰곰히 생각했다.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이 정한 것인데, 점쟁이의 술법 따위로 면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면한다고 하더라도 더 큰 문제가 닥칠 것만 같았다. "필요없소이다." ..

[요재지이] 공생과 교나의 기묘한 인연

공생은 공자의 후손이었는데, 인품이 있는데다 시를 잘 지었다. 하루는 친한 친구가 천태현의 현령이 되었다며 초대했는데, 초대에 응해 그곳으로 가보니 아뿔사 친구는 갑자기 숨을 거둔 상태였다. 친구에게 노잣돈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가진 돈을 모두 써버린 공생으로서는 난감한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었던 공생은 근처의 보타사라는 절에 얹혀 살면서 경전을 베끼는 일로 연명하고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인근에 있는 선씨 집안의 저택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곳은 선씨가 소송에 휘말려 가세가 기울면서 시골에 가는 바람에 비어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비어있던 집에서 한 소년이 나오더니 공생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올리며 자기 집에 들러달라고 부탁했다. 소년이 귀품있게 잘 생긴데..

[요재지이] 도사의 길 - 왕생

한 마을에 왕생이란 서생이 살고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도술을 좋아해서 신선들이 많이 산다는 노산으로 떠났다. 왕생이 노산에 도착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딱 도사가 살 것처럼 생긴 도관이 한 채 눈에 들어왔다. 도관에 들어간 왕씨는 도사에게 절을 올리고 도술을 가르쳐주길 청했는데, "당신같이 귀하게 자란 사람은 고생을 감당하지 못할 텐데요." 하지만 물러설 왕생이 아니었다. "해낼 수 있습니다." 하고 큰소리를 친 왕생은 그날로 도관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도술을 배우는 과정이 늘 그렇듯, 도사가 왕생에게 시킨 일이라곤 도끼 한 자루로 나무를 해오라는 것 뿐이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나무 하기에 왕생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질 때쯤, 도관으로 손님 둘이 찾아왔다. 해가 지고 도관이 어두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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