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공학/요재지이(聊齋志異)

[요재지이] 의좋은 형제, 눌과 성

강인태 2022. 12. 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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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 사는 장씨는 원래 산동 사람이었는데,

명 말기에 이르러 청 나라 군대가 그의 아내를 잡아가자 산동을 떠나 하남에 자리잡게 되었다.

 

하남에서 새장가를 든 장씨는 눌이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아들을 낳은 직후 아내가 죽어버리자 세번째 아내를 얻어 성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성의 어머니는 성질이 포악해서 전부인의 아들인 눌을 늘 구박했는데, 

매일같이 지게 한 가득 나무를 해오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호된 꾸지람과 함께 밥을 주지 않았다.

이것을 안 성이 어머니에게 남몰래 그러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계모의 본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어느날 갑작스런 비바람에 눌은 나무를 별로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고, 

저녁을 굶고 주린 배를 붙잡고 누워있자니 동생 성이 다가왔다.

 

"어디 아파?"

 

"아니, 그냥 배가 고픈 거야."

 

대강의 사정을 들은 성은 부엌으로 가서 밀가루떡을 가져와 형에게 내밀었다.

 

"이러다 어머니께 걸리면 너도 야단 맞을 텐데-"

 

"괜찮아. 내일부터는 내가 나무하는 것도 도와줄게."

 

"안돼. 너는 글공부나 해."

 

눌의 만류에도 성은 다음날부터 늘 형을 따라와 나무하는 것을 도와줬는데-

이 바람에 오전에는 늘 수업을 빼먹었다.

눌은 훈장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성이 나무하러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훈장은 성의 착한 성품을 칭찬하며 오히려 오전 수업을 공식적으로 빼줘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나무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큰 호랑이가 나타났는데, 

하필이면 성을 물고 달아났다.

눌이 놀라 쫓아가며 호랑이의 다리를 도끼로 찍었지만,

호랑이는 고통스런 포효를 한 후 성을 그대로 문 채 멀리 사라져버렸다.

 

 

 

 

성을 잃어버린 눌은 슬픔에 소리를 질렀다.

 

"동생을 잃고 나 혼자 살아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곤 나무를 하던 도끼로 자기 목을 내리쳐버렸다.

눌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사람들은 그를 업고 집에 데려다줬는데-

큰 부상을 입었지만 아들을 잃어버린 계모의 구박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결국 눌에게 저승사자가 찾아왔다.

 

"혹시 제 동생을 보셨습니까?"

 

"동생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성은 장씨고, 이름은 성이라 합니다."

 

"그런 이를 저승에 데리고 간 기억은 없는데- 봐라. 장부에도 그 이름이 없지 않느냐?"

 

"혹시 다른 분이 데리고 가지는 않았을까요?"

 

"그럴 수는 없다. 이곳은 모두 내 관할이니."

 

그렇게 저승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외쳤다.

 

"보살님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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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보살은 몇십년에 한번씩 나타나 저승에 온 자들 중 몇몇을 구원해준다는 것.

보살은 눌을 보더니 감소수가 묻은 버들가지로 그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사방이 모두 사라지더니 눌은 어느새 자기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죽은지 이틀만에 되살아난 눌은 본능적으로 자기 목을 만졌는데,

도끼날이 파고든 자리에는 완전히 새살이 돋아나 흔적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눌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동생을 찾아오겠습니다. 

틀림없이 살아 있을 것이니 천지사방을 모두 뒤져서라도 찾아오겠습니다."

 

아버지는 눌이 실성했다고 생각하고 만류했지만 눌은 막무가내로 집을 나섰다.

 

그러던 어느날 눌은 한무리의 말 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첫눈에도 지체가 높아보이는지라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눌 형님 아니십니까?"

 

고개를 들어 보니 정말 말에 탄 소년은 다름아닌 동생 성이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간 성이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대가집 방 안이었는데, 

장별가 일행이 길을 가다 그를 발견해 보살펴준 것이었다.

성의 용모가 단정하고 예의바른 것을 눈여겨본 장별가는 성을 양아들로 삼았다는 것.

눌은 그길로 성을 따라 장별가의 집으로 갔는데-

장별가의 어머니가 눌을 눈여겨 보더니 물었다.

 

"자네 출신이 어디인가?"

 

"지금은 하남에 사는데 원래는 산동 출신입니다."

 

"어찌해서 하남에 살게 됐는가?"

 

"전쟁통에 큰어머니가 잡혀가자 아버지가 하남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합니다."

 

"아버지 성함이?"

 

아버지의 이름을 이야기하자 별가의 어머니는 별가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바로 네 동생이구나. 내가 장씨집안에 시집을 가서 3년만에 끌려갔단다.

그 후에 흑고산의 처가 되었는데, 6개월만에 이 아이를 낳은 것이다.

그러니 너희 셋은 모두 한 아버지를 둔 셈이다.

너는 동생을 아들로 삼았으니 망측한 일이다."

 

"모르고 한 것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이제라도 동생으로 삼으면 되지요,"

 

그렇게 삼형제가 된 세 사람이 집으로 오니

그간에 성의 어머니는 병들어 죽어버렸고, 아내와 아들 둘을 모두 잃어버렸다 생각한 아버지는 갑자기 확 늙어 있었다.

하지만 세 아들이 찾아와자 아버지는 다시 힘을 내서 다 같이 평화롭게 살았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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