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공학/요재지이(聊齋志異)

[요재지이] 도사의 길 - 왕생

강인태 2022. 12. 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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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왕생이란 서생이 살고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도술을 좋아해서 신선들이 많이 산다는 노산으로 떠났다.

 

왕생이 노산에 도착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딱 도사가 살 것처럼 생긴 도관이 한 채 눈에 들어왔다.

도관에 들어간 왕씨는 도사에게 절을 올리고 도술을 가르쳐주길 청했는데,

 

"당신같이 귀하게 자란 사람은 고생을 감당하지 못할 텐데요."

 

하지만 물러설 왕생이 아니었다.

 

"해낼 수 있습니다." 하고 큰소리를 친 왕생은 그날로 도관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도술을 배우는 과정이 늘 그렇듯, 

도사가 왕생에게 시킨 일이라곤 도끼 한 자루로 나무를 해오라는 것 뿐이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나무 하기에 왕생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질 때쯤,

도관으로 손님 둘이 찾아왔다.

 

해가 지고 도관이 어두워지자 스승은 종이를 동그랗게 오려 벽에 붙였는데, 

그 종이에서 환한 달빛이 쏟아지며 방을 훤히 밝혔다.

 

흐흠~~

 

그러자 한 손님이 달빛에 취해 말했다. 

 

"이렇게 달빛이 좋은데, 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여기 좋은 술이 있으니 제자들도 모두 불러 마시게 하시지요."

 

그렇게 말한 손님이 술을 달랑 한병 내놓자 왕생은 속으로 비웃었다.

 

사람이 몇 명인데, 겨우 한 병?

 

하지만 조그만 술병에서 모든 사람이 실컷 마시고도 끝없이 술이 나오자 

왕생은 다시 도사가 되고 싶은 열망이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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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도사는 술자리가 허전하다며 젓가락을 벽에 걸린 달 속으로 던졌는데, 

곧 달 속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튀어나와 모두를 위해 춤을 추었다. 

 

길었던 술자리가 끝나고 모두가 잠자리에 든 시간, 

왕생은 도사가 되고 싶은 열망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또다시 고된 나무하기가 반복되자

왕생의 열망은 한달을 채 가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졌다.

결국 왕생은 스승을 찾아가 말했다.

 

"먼길을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는데, 

불로장생까지는 아니라도 조그만 재주라도 알려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란 제가 이렇게 고생하느데-"

 

"그러게 못 견딜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일이라도 집으로 돌아가게."

 

"이대로는 억을해서 못 갑니다. 

조그만 재주라도 하나 알려주십시요."

 

왕생의 간청에 도사가 못 이기는 척 말했다.

 

"뭘 배우고 싶은가?"

 

"전에 보니 스승님은 담벼락이 있어도 그냥 지나가셨습니다.

저도 그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스승은 흔쾌히 허락하고, 

주문을 하나 가르쳐주며 왕생에게 외우게 했다.

 

"이제 저 벽을 지나가보게."

 

하지만 왕생은 두려운 마음에 벽 앞에서 머뭇거렸다.

 

"어서 지나가라니까."

 

왕생이 두 눈을 꼭 감고 벽으로 돌진하니, 어? 어느새 자기 몸이 빚 밖으로 나와있었다.

왕생은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얼른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도 몸가짐을 단정히 하게.

그러지 않으면 아무런 효험이 없을 것이니-"

라는 스승의 당부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린 채.

 

집에 도착한 왕생은 아내를 불러다 자기가 배워온 도술을 보여주겠다며 자랑을 늘어놓고는,

스승이 가르쳐준 주문을 외우고 담장을 향해 돌진했다.

 

쿵!

 

왕생은 담장을 통과하기는커녕 이마에 주먹만한 혹만 얻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속았다는 분통과 죽어버리라는 저주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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