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생과 주생은 동문 수학하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성생은 가난해서 늘 주생에게 의지했고,
나이도 주생이 더 많이 성생은 그를 형으로 모시며 우애를 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주생은 아내가 죽자 나이 어린 여자를 후처로 맞아들였는데,
성생은 너무 어린 형수를 멀리하며 가능한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루는 성생이 주생의 집에 들렸는데,
마침 주생의 집 마름이 관가에 끌려가 매질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인즉슨 주생의 마름이 일대 세도가인 황씨 집안의 소치기에게 주씨의 밭에 침범했다며 욕을 한 것.
"황가는 원래 우리 할아버지의 노복이었는데,
벼슬 자리에 올랐다고 어찌 이리 함부로 한단 말인가?"
퍼
불같이 화를 낸 주생이 당장 황씨의 집으로 쫓아가려하자
성생이 그를 말리며 말했다.
"도둑놈들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원래 시비를 가릴 수 없습니다.
관리라는 것들도 흉기만 안들었지 날강도나 다름 없으니 그냥 참으십시요."
성생이 기를 쓰고 말린 덕분에 주생은 자리에 도로 앉았으나,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주생은 관가에 찾아가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그의 고소장을 받아든 현령은 보는데서 소장을 찢어버리고는
대드는 주생을 옥에 가두어버렸다.
현령은 황씨집안과 짜고 주생에게 당시 감옥에 갇혀 있던 해적들과 한패라는 누명을 씨워
옥에 그대로 가두어두고 심한 고문까지 가했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성생은 당장 감옥에 찾아가 말했다.
"이 일은 현령에게 따져서 될 일이 아닙니다.
제가 수도로 가서 황제께 읍소하겠습니다."
그길로 수도로 간 성생은 황제가 사냥 가는 길목을 지켜 읍소를 했는데,
황제는 친필로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서신을 내어주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현령과 황씨는 주생을 죽여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주생에게 음식을 전해주던 동생의 출입을 아예 막아버렸다.
옥에서 시름시름 죽어가던 주생은 죽기 일보 직전에
성생이 관청에 전달한 서신에 따라 재조사를 받아 살아날 수 있었다.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현령은 유배되었지만,
황씨는 또다시 뇌물을 써서 무죄로 풀려나버렸다.
주생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사 성생이 그에게 말했다.
"이런 세상에서 어지럽게 살지 말고 그냥 도를 닦으러 은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주생은 나이어린 아내를 두고 갈 수 없다며 웃어넘겼다.
이후 한참을 지나도 성생이 자신의 집을 찾지 않자 주생은 자신이 성생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성생은 자기 집에도 들어온 지 한참 되었다는 소식만 전해들었다.
'이 친구가 정말 도를 닦으러 간 모양이군.'
그러고 9년이 흐른 어느 날,
주생의 집에 성생이 홀연히 나타났는데 영락없는 도사 차림이이었다.
두 사람은 밤늦도록 술자리를 가진 뒤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든 주생이 무언가 짓누르는 느낌에 눈을 뜨니 성생이 자기 위에 올라타있었다.
깜짝 놀란 주생이 정신을 차리자 옆에 누워있던 성생이 보이질 않았다.
큰소리로 하인을 부르니 하인이 그를 보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저희 주인 나리는 어디가셨습니까?"
어이없는 하인의 말에 주생이 자신의 얼굴을 더듬어보니 수염도 별로 없는 것이 분명 자기 얼굴이 아니었다.
냉큼 거울을 들여다보니 거울 속에는 주생이 아닌 성생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이 친구가 장난질을 심하게 쳤구만-'
주생은 동생조차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바람에 그대로 성생을 찾아 길을 나섰다.
긴 여행 끝에 노산에 도착하여 물어물어 성생을 찾아가던 주생은 한 동자를 만났고,
그에게 성생을 아느냐고 물으니
"제 스승님입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주생의 보따리를 받아든 동자를 따라 3일이나 걷고 또 걸어서
들꽃이 만발한 곳에 도착하니 성생이 주생의 모습을 하고 마중나와 있었다.
환담을 나눈 두 사람이 자리에 누워 깜빡 잠이 들자 다시 두 사람의 몸이 바뀌어 본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날이 밝고 성생이 주생을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며 길을 나서자
올 때는 며칠이나 걸렸던 길이 일각도 채 걷지 않아 주생의 집앞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주생이 안방으로 가보니 아뿔싸 방에는 어린 아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종놈 하나와 엉겨붙어 있는 것을 본 주생은
성생과 함께 방안으로 뛰어들어 종놈을 칼로 베어버렸고,
자신이 옥에 갇혔을 때부터 붙어 먹었다는 아내의 말에 이성을 잃어버린 주생은
아내마저 잔혹하게 죽여버렸다.
성생의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던 주생은 깨어난 뒤 성생에게 말했다.
"내가 간밤에 괴이한 꿈을 꾸었다."
주생이 꿈의 내용을 말하니 성생이 대답하기를
"형님, 그것은 꿈이 아닙니다."
성생의 말에 주생이 얼른 자기 집으로 가보니
그의 동생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간밤에 강도가 들어 형수님을 살해하였습니다.
아직 범인의 행방조차 알 수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주생은 동생에게 자초지종을 일러주고 범인을 찾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집을 떠났다.
그리고 몇년 뒤 주생의 동생에게 봉투 하나가 배달되었는데-
봉투 속에는 손톱이 하나 들어 있을 뿐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동생이 손톱을 꺼내 벼루 위에 올려두었더니 벼루가 황금을 변했다.
벼루 뿐만이 아니었다.
손톱에 닿은 물건은 모두 황금으로 변했고,
동생은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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