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공학/요재지이(聊齋志異)

[요재지이] 수망초

강인태 2022. 12. 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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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망초는 덩굴과에 속하는 독초인데 보라색 꽃이 폈다. (투구꽃이랑 비슷하군요.)

사람이 수망초를 먹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렇게 죽은 사람을 수망귀라고 불렀다.

수망귀는 저승으로 가서 윤회를 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 되는데,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수망초를 먹고 죽게 만들어야만 했다.

 

축생은 초 지방 사람이었는데, 친구인 아무개를 찾아가던 도중 목이 말라 찻집에 들렀다.

차를 한잔 시키니 노파가 차를 내어왔는데, 

아무래도 냄새가 이상해서 입에 대지도 않고 찻집을 떠나려는데 노파가 다른 쪽을 보며 말했다.

 

"삼낭아 좀 더 좋은 차를 한잔 가져오거라."

 

그러자 잠시 후 열다섯살쯤 되어보이는 소녀가 찻잔을 받쳐 나타났는데,

역시나 천하일색이었다. 

여색에 취했으니 그녀가 가져다준 차향도 향기로울 수밖에 없었고,

축생은 냉큼 그 차를 받아마시고 찻잎까지 추가로 구매해서 아무개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개의 집에 다다르니 축생은 갑자기 가슴이 아파오며 구역질이 났는데, 

그것을 본 아무개가 말했다.

 

"큰일났네. 자네는 수망초를 먹은 게야. 

그것들은 틀림없는 수망귀로군."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수망초를 먹고 살아날 방도는 하나밖에 없네.

수망귀가 살아생전 입던 속옷을 달여먹어야 한다네."

 

아무개의 말에 축생이 자신이 만났던 소녀의 모습을 이야기하자

 

"그 소녀는 구삼낭인 것 같네."

 

"구삼낭?"

 

"남촌에 사는 구씨에게 딸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네,

자네 말을 들어보니 그녀의 용모와 꼭 닮았네."

 

앓아누운 축생을 대신해 아무개는 얼른 구씨 집안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구씨는 자기딸이 드디어 귀신의 상태를 벗어나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기회를 잡았다는데, 

아무개의 청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결국 아무개는 빈손으로 돌아왔고, 축생은 죽어가며 다짐했다.

 

"내가 죽어도 그 여자가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하게 하겠네."

 

축생이 죽자 아내는 어린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가버렸고,

어린 손자를 혼자 키워내는 할머니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고단한 하루를 보낸 축생의 어머니가 아들 생각에 울음을 터트렸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 방안으로 쓰윽 들어왔다.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바라보니 죽은 축생이 앞에 서 있었다.

 

"어머니께서 이리 슬피 우시니 제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죽었지만 아내도 새로 얻었으니 소개를 해드리지요."

 

축생의 말에 이어 한 여자가 방안으로 들어왔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저는 구삼낭이라 합니다."

 

"저에게 수망초를 먹인 여자입니다.

제가 죽고서 원한을 갚으려고 백방으로 찾았더니 어느새 임 시랑이란 사람의 딸로 태어나있더군요.

하지만 제가 강제로 다시 데려와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그리된 인연인데도 다행히 사이가 좋습니다.

이제 저희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 터이니 걱정마십시요."

 

그렇게 축생의 어머니와 귀신이 된 아들 부부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축생은 수망초를 누군가에게 먹여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보다는

수망초를 이용해 누군가를 죽이려는 수망귀들을 찾아내어 저승으로 쫓아버리기 시작했다.

 

"너도 얼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하지 않겠느냐?"

 

하고 어머니가 묻자 축생이 대답했다.

 

"자기가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나쁜 것들을 혼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더구나 어머니와 이렇게 지낼 수 있는게 너무나도 좋습니다. 

제가 구태여 다른 집안의 아이로 다시 태어날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수망초를 먹고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모두 축생의 집으로 찾아와 도움을 청했는데, 

그의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면 어김없이 수망초를 먹은 사람의 병이 났곤 했다.

당연지사 축생의 어머니의 경제적 형편도 나아졌다.

 

그렇게 세월이 10년이나 지나자 축생의 어머니가 병들어 세상을 떠나자, 

축생 역시 하늘의 부름을 받아 인간으로 환생하는 대신 저승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다. 

 

 

(영화 '링'이나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행운의 편지처럼 불행을 돌려막는 컨셉이 옛날부터 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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