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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공학/요재지이(聊齋志異) 19

요재지이- 죽청, 까마귀의 사랑

어객은 과거에 떨어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가난한 살림에 멀리 떠나온지라 고향에 닿기도 전에 돈이 몽땅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오왕묘(사당)에 들어가 쉬는데, 다른 사람 하나가 다가와 따라오라더니 사당 안에 있는 오왕을 알현시켰다. "흑의대에 병졸 자리가 비었으니, 이 사람에게 맡겨보면 어떨지요?" 오왕의 허락이 떨어지고 어객에게는 검은 옷 한벌이 주어졌다. 어객이 검은 옷을 몸에 걸치자 그는 어느새 까마귀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었다. 까마귀가 된 오객은 근처 호수를 항해하는 배의 돛대에 걸터앉았는데, 사람들이 고기 덩이를 던져주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이거 괜찮은 팔자로세.' 하며 어객은 이 까마귀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며칠 지나아 오왕은 어객에게 죽청이라는 암놈을 소..

요재지이 - 궤짝 속의 머리카락

호남의 한 주좌(관직 이름)는 세금 육십만냥을 수도로 운송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길을 가다 날이 저무는 바람에 근처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세금 육심만냥이 온데간데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주좌는 윗사람에게 사정을 고하고 다시 돈을 찾으러 갔다. 절 근처에 이르자 한 장님이 '걱정거리를 해결해드립니다.' 하는 간판을 걸고 있어 점을 쳐달라고 했다. "돈을 잃어버리셨군요." 장님이 바로 맞히자 주자는 신기해하며 자초지종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견여(가마의 한 종류)를 한대 준비해서 저를 따라오십시요." 한참 장님을 따라가자니 그는 "서쪽으로 난 솟을 대문이 보이면 문을 두드려 물어보십시요." 하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장님이 알려준 문이 보이자 사람을 불러 돈의 행방을 ..

요재지이 - 한생을 대접한 도사

한생은 친구 사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한생은 친구들과 술자리를 나누던 어느날, 한 도사가 집 앞에 찾아와 탁발을 했다. 하인이 돈과 곡식을 내주었건만 도사는 그것을 받지도 않고, 떠나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목탁만 두들겼다. 하인에게 이 말을 들은 한생은 도사를 안으로 모시라고 했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사는 이미 술판이 벌어진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리 앉으시지요." 한생이 합석을 권하자 자리에 앉은 도사 왈, "이곳으로 와 친구를 사귀지 못했는데, 거사껫는 매우 호탕해 보이시나 몇잔 얻어마실까 합니다." 도사는 권하는 술과 음식을 마다않고 실컷 먹고 나서 떠났는데, 이날 이후로 한생의 집에서 술판이 벌어질 때마다 찾아와 얻어먹었다. 한생은 이 ..

[요재지이] 장우단과 노공녀

초원현에 장우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격이 호방하여 얽매임이 없는 사람이었다. 당시 초원현의 현령인 노공에게는 아리따운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말 타는 모습을 본 장우단은 한눈에 반해버렸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노공의 딸 노공녀는 갑작스런 병으로 죽어버렸다. 노공은 딸의 영구를 장우단이 기거하던 절에 안치했는데, 이미 그녀를 향한 마음이 깊었던 장우단은 노공녀를 위해 매일 같이 기도를 드렸따. "한번 본 뒤로 잠시도 잊을 수 없었는데, 그리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버리다니- 이렇게 가까이 있지만 생과 사의 경계가 산과 강보다도 넓으니 한스럽구려." 이렇게 매일 같이 기도를 한 덕분인지 보름이 지난 저녁 책을 읽고 있는 장우단 앞에 노공녀가 아리따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당신의 깊은 정에 감격해 ..

[요재지이] 홍옥과 상여

어머니를 여윈 상여는 늙은 아버지와 둘이 괴죄죄하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상여가 달을 보고 있자니 담 너머 나무 위에 웬 여자가 하나 앉아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피니 역시나 한 미모하는지라 상여는 사정사정하여 여자를 안으로 들여 정을 나누었다. 그렇게 둘은 깊은 사이가 되어 매일같이 여자는 담을 넘어 들어왔는데, 결국엔 그 소리가 잠든 상여의 아버지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네 이놈. 집안이 이꼴이 되었는데, 밤마다 방탕한 짓거리나 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리고 처자는 혼례도 치르지 않은 마당에 담을 넘어들어와 남자와 정을 통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소?" 아버지의 호통에도 상여는 여자를 붙들었지만 오히려 여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홍옥이라 하옵니다. 우리가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고..

[요재지이] 아들 노릇을 한 호랑이

한 지방에 아들과 둘이 살아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산에 들어갔던 아들이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바람에 할머니는 망연자실. 현청에 찾아가 현령 앞에서 울부짖었다. "호랑이 놈이 우리 아들을 죽였으니 사형시켜주시오." "호랑이를 어찌 국법으로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현령은 원칙적인 대답을 했지만 울부짖는 할머니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호랑이를 잡아주겠노라 약속을 한 현령이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누가 호랑이를 잡아오겠느냐?" 이때 이능이란 사람이 낮술에 취해 있다 호기롭게 대답했다. "제가 잡아오겠습니다요." 하지만 다음날 술을 깨고 보니 호랑이를 잡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 현령의 명령 역시 노인을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을 거라 생각하고, 명을 거두어주길 청했지만 돌..

[요재지이] 교낭, 삼낭, 그리고 부렴

광동 지방에 부렴이라는 영리한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생식기가 자라지 않았다. 열일곱이 되었건만 그의 거시기는 겨우 누에고치 수준. 동네방네 소문은 날대로 난 터라 이대로라면 장가를 가기는 어렵게 생겼다. 하염없이 글 공부나 열심히 하던 부렴은 어느날 선생님이 출타하며 숙제를 잔뜩 내줬건만 숙제는 나 몰라라라 하고, 때마침 대문 밖에 놀러온 원숭이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선생님이 돌아올 시간이 되자 불호령이 무서워진 부렴. '그래, 차라리 잘 되었다. 아무도 내가 고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동네로 가버리자.' 그렇게 가출한 부렴이 하염없이 길을 가는데- 시녀와 함께 걸어가는 소복 입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 이야기가 다 그렇듯 여자는 아름다웠고, 부렴은 한눈에 반해버렸다. 빠른 걸음으로 바짝..

[요재지이] 의좋은 형제, 눌과 성

하남에 사는 장씨는 원래 산동 사람이었는데, 명 말기에 이르러 청 나라 군대가 그의 아내를 잡아가자 산동을 떠나 하남에 자리잡게 되었다. 하남에서 새장가를 든 장씨는 눌이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아들을 낳은 직후 아내가 죽어버리자 세번째 아내를 얻어 성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성의 어머니는 성질이 포악해서 전부인의 아들인 눌을 늘 구박했는데, 매일같이 지게 한 가득 나무를 해오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호된 꾸지람과 함께 밥을 주지 않았다. 이것을 안 성이 어머니에게 남몰래 그러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계모의 본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어느날 갑작스런 비바람에 눌은 나무를 별로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고, 저녁을 굶고 주린 배를 붙잡고 누워있자니 동생 성이 다가왔다. "어디 아파?" "아니, 그냥..

[요재지이] 수망초

수망초는 덩굴과에 속하는 독초인데 보라색 꽃이 폈다. (투구꽃이랑 비슷하군요.) 사람이 수망초를 먹으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렇게 죽은 사람을 수망귀라고 불렀다. 수망귀는 저승으로 가서 윤회를 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 되는데,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수망초를 먹고 죽게 만들어야만 했다. 축생은 초 지방 사람이었는데, 친구인 아무개를 찾아가던 도중 목이 말라 찻집에 들렀다. 차를 한잔 시키니 노파가 차를 내어왔는데, 아무래도 냄새가 이상해서 입에 대지도 않고 찻집을 떠나려는데 노파가 다른 쪽을 보며 말했다. "삼낭아 좀 더 좋은 차를 한잔 가져오거라." 그러자 잠시 후 열다섯살쯤 되어보이는 소녀가 찻잔을 받쳐 나타났는데, 역시나 천하일색이었다. 여색에 취했으니 그녀가 가져다준 차향..

[요재지이] 천녀유혼

영채신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품행이 단정한 사람이어서 "내 평생 여자는 아내뿐이다." 라며 사람들에게 공언하곤 했다. 어느날 영채신은 금화성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묵을 곳을 찾았지만 성 안의 숙소는 방값이 너무나 비싸 성 북쪽에 있는 빈 절에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문이 잠긴 탓에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날이 저물고서야 한 사람이 나타났다. 영채신은 얼른 인사를 하며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는데 "저도 여행중인 사람입니다. 이곳은 주인이 없어 썰렁한 절이니 함께 지내주시면 저도 감사한 일이죠. 저는 연생이라 합니다." 영채신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낯선 탓인지 좀처럼 남을 이루지 못했는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창틈으로 쳐다보니, 한 노파와 여자 하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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