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공학/요재지이(聊齋志異)

[요재지이] 장우단과 노공녀

강인태 2022. 12. 1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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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현에 장우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격이 호방하여 얽매임이 없는 사람이었다.

당시 초원현의 현령인 노공에게는 아리따운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말 타는 모습을 본 장우단은 한눈에 반해버렸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노공의 딸 노공녀는 갑작스런 병으로 죽어버렸다.

노공은 딸의 영구를 장우단이 기거하던 절에 안치했는데,

이미 그녀를 향한 마음이 깊었던 장우단은 노공녀를 위해 매일 같이 기도를 드렸따.

 

"한번 본 뒤로 잠시도 잊을 수 없었는데, 그리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버리다니-

이렇게 가까이 있지만 생과 사의 경계가 산과 강보다도 넓으니 한스럽구려."

 

이렇게 매일 같이 기도를 한 덕분인지 보름이 지난 저녁 책을 읽고 있는 장우단 앞에 노공녀가 아리따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당신의 깊은 정에 감격해 이렇게 위험을 무릎쓰고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뒤로 두 사람은 매일 밤 밀회를 나누었는데, 하루는 노공녀가 말했다.

 

"생전에 그리 일찍 죽은 것은 사냥을 좋아해 많은 업을 쌓은 탓입니다.

저를 위해서 금강경을 낭송해 주세요."

 

그 뒤로 장우단은 매일 같이 금강경을 읊조렸고, 그렇게 5년이 지나갔다.

노공녀는 어느날 눈물을 흘리며 나타나 말했다.

 

"당신이 금강경을 읽어준 덕분에 제 업이 소멸했습니다.

덕분에 하북의 노호부의 집 여식으로 태어나게 되었는데, 

이제 당신을 만날 수 없으니 그것이 한입니다.

혹여 저를 잊지 않으신다면 15년 후, 8월 16일에 저희 집으로 찾아와주십시요."

 

하지만 장우단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내 나이 벌써 서른을 넘었소.

15년 뒤라면 당신은 겨우 열다섯살이지만 나는 쭈그렁 노인이 되어 있을텐데,

당신을 찾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하다 못해 몸종이라도 되어 은혜를 갚을 테니 꼭 와주세요."

 

그 뒤로도 장우단은 끊임없이 정진하며 경을 외웠고,

그 덕분에 오십을 넘긴 어느날 윤기를 잃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얼굴에 주름이 싹 펴지면서 십대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미소년으로 거듭난 장우단은 15년 8월 16일을 맞아 하북땅의 노호부의 집을 찾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한 장우단을 노공녀는 알아보지 못했다.

노인의 모습을 기대했건만 서로 만나던 시절보다 더 어려졌으니 당연한 일.

노공녀는 장우단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슬퍼하다가 그대로 목숨을 잃어버렸다.

 

그날 밤 장우단의 꿈에 노공녀가 나타났다.

 

"당신이 약속을 어겼다는 생각에 목숨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법력이 높으니 오늘 밤 안으로 저를 찾아와 제 혼백을 불러주시면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장우단은 노호부의 집으로 달려가 노공녀의 시신을 부여잡고 그녀의 넔을 애타게 부르자,

곧 창백한 시신에 온기가 돌며 노공녀가 깨어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혼인해서 행복하게 여생을 보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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