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공학/요재지이(聊齋志異)

[요재지이] 아들 노릇을 한 호랑이

강인태 2022. 12. 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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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에 아들과 둘이 살아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산에 들어갔던 아들이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바람에 할머니는 망연자실.

현청에 찾아가 현령 앞에서 울부짖었다.

 

"호랑이 놈이 우리 아들을 죽였으니 사형시켜주시오."

 

"호랑이를 어찌 국법으로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현령은 원칙적인 대답을 했지만 울부짖는 할머니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호랑이를 잡아주겠노라 약속을 한 현령이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누가 호랑이를 잡아오겠느냐?"

 

이때 이능이란 사람이 낮술에 취해 있다 호기롭게 대답했다.

 

"제가 잡아오겠습니다요."

 

하지만 다음날 술을 깨고 보니 호랑이를 잡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

현령의 명령 역시 노인을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을 거라 생각하고,

명을 거두어주길 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불호령이었다.

 

"이놈! 호언장담하더니 도로 물리자는 것이냐?

가당치도 않다."

 

어쩔 수 없이 현령에게 부탁해 사냥꾼을 모은 이능은 호랑이를 찾아다녔지만,

넓은 산중에서 호랑이를 찾는 일이 잘 될 턱이 없었다.

결국 달포가 지나도록 성과가 없자 노인의 성화에 못이긴 현령은 애꿎은 이능에게 곤장 수백대를 때리라 명했다.

 

아프고,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에 이능은 성황당을 찾아가 울며 기도했다.

 

"제발 호랑이가-"

 

그런데 기도발이 먹혔는지 바깥에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대며 나타났다.

두려움에 떨던 이능은 정신을 차리고 호랑이를 보며 말했다.

 

"네놈이 할머니의 아들을 죽인 놈이라면 얌전히 내 포승을 받아라."

 

고개를 끄덕인 호랑이는 얌전히 목을 내밀었다.

호랑이를 묶어 현청으로 데려가자 현령이 다시 물었다.

 

"네놈이 사람을 죽였느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호랑이.

 

"사람을 죽인 자는 원래 사형에 처하는 법이지만, 너는 호랑이이니 그 또한 어렵구나.

만일 네놈이 할머니의 아들 노릇을 하겠다면 특별히 죄를 용서해주마."

 

호랑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현령은 큰 맘 먹고 놈을 풀어주었다.

이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노발대발.

하지만 다음날 아침 할머니 집 마당에 사슴이 한 마리 턱 놓여있었다.

그러곤 시시때때로 이것저것 물어다주니 할머니는 살림이 아주 넉넉해졌고,

호랑이를 원망하던 마음도 차차 옅어졌다.

 

몇년 뒤 할머니가 세상을 뜨자 호랑이가 찾아와 엉엉 울고 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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