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공학/요재지이(聊齋志異)

요재지이 - 궤짝 속의 머리카락

강인태 2022. 12. 1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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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한 주좌(관직 이름)는 세금 육십만냥을 수도로 운송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길을 가다 날이 저무는 바람에 근처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세금 육심만냥이 온데간데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주좌는 윗사람에게 사정을 고하고 다시 돈을 찾으러 갔다.

 

절 근처에 이르자 한 장님이 '걱정거리를 해결해드립니다.' 하는 간판을 걸고 있어 점을 쳐달라고 했다.

 

"돈을 잃어버리셨군요."

 

장님이 바로 맞히자 주자는 신기해하며 자초지종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견여(가마의 한 종류)를 한대 준비해서 저를 따라오십시요."

 

한참 장님을 따라가자니 그는 "서쪽으로 난 솟을 대문이 보이면 문을 두드려 물어보십시요." 하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장님이 알려준 문이 보이자 사람을 불러 돈의 행방을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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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며칠 계시면 제가 당사자를 데려다 뵈러 가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집에서 며칠 지내게된 주좌는 어슬렁어슬렁 집을 둘러보았는데,

멋진 정원에 감탄하던 중 누각 안의 벽에 사람의 가죽이 걸려있는 걸 보게되었다.

가죽은 이목구비가 뚜렷한데다 피비린내가 나는 것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게 틀림없었다.

모골이 송연해진 주좌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공포에 떨고 있는데 "저희 윗분을 뵈러 가시지요." 하며 사람이 찾아왔다.

 

쭈삣쭈삣 따라가보니 검은 옷을 입은 호위병이 늘어선 가운데, 구슬관을 스고 예복을 입은 왕이 앉아있었다.

왕이 말하길

 

"네가 호남의 세금을 운송하던 사람이냐?"

 

"네."

 

"그 돈은 모두 여기있다.

그깟 몇푼되지도 않는 돈 그냥 내게 바쳐도 되겠지?"

 

"아니됩니다. 저희 순무께서 그 돈을 꼭 찾아오라며 말미를 준 것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냥 돌아갔다가는 심한 벌을 받을 것이옵니다."

 

왕은 궤짝을 하니 내어주며 말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너희 순무에게 전하라.

그리고 그 돈은 내게 바쳤다고 하고-

별일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궤짝을 받아든 주좌가 돌아와 순무공에게 아뢰니 노발대발-

그는 재빨리 받아온 궤짝을 내놓았다.

그러자 순무는 "돈 따위야 사소한 것이지. 가서 볼일을 보거라." 하며 순순히 주좌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순무는 며칠 지나지 않아 앓아눕더니 그대로 세상을 하직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주좌가 궤짝을 열어보니 여자 머리카락 한 웅큼과 서신이 들어있었다.

주위에 물어보니 순무의 첩이 얼마 전에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카락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고-

서신을 펼쳐보이 이렇게 적혀있었다.

 

 

"저는 벼슬에 들어 지금의 높은 자리에 오르기까지 뇌물을 받는 등 수많은 죄를 저질렀다.

내 너에게 경고하느라 첩의 머리카락을 가져간 것인데,

뉘우치지 않는다면 다음은 네 머리통이 될 것이니 각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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