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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세르 신화] 하늘 용사들의 최후

강인태 2022. 11.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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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소톤에게 속아 넘어간 하늘 용사들의 잔치는 끝없이 이어졌고, 모두들 만취 상태가 되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사르갈 노욘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 얼굴을 측은히 여긴 하늘 용사들은 막내인 에르헤 만잔을 보내 적들의 동태를 살펴오게 했다.

즉시 길을 떠난 에르헤 만잔은 엘리스테 산 자락에 도착해 적들이 있던 들판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도망친 줄 알았던 적들이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르헤 만잔이 즉시 화살을 한대 쏘아붙이자,한번에 천명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적들의 숫자는 전혀 줄어든 느낌이 없었다.
에르헤 만잔은 하늘 용사들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즉시 말머리를 돌렸다.

그때 샤라블린 진영의 사령관인 비로오자가 에르헤 만잔의 모습을 포착하고는 부하들에게 그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을 받은 샤라블린의 장수들은 아직 술이 채 깨지 않아 제대로 속력을 낼 수 없었던 에르헤 만잔을 어렵지 않게 따라잡았다. 
하지만 에르헤 만잔의 늠름한 모습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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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서라."

그러자 에르헤 만잔도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 땅으로 쳐들어왔느냐?"

"목적? 네가 하늘의 용사라면 그런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야지. 거대한 일곱 까마귀가 네놈 뒤에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뒤에 까마귀가 있다는 말에 속은 에르헤 만잔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의 옆구리에 화살이 날아들었다.
미쳐 피하지도 막지도 못한 화살은 에르헤 만잔의 옆구를 관통해 등 뒤쪽으로 튀어나왔다.
놀란 에르헤 만잔이 고통을 참으며 화살을 날리자 샤라블린의 장수들은 모두 죽어나갔다.

서둘러 말을 돌려 자신의 진영으로 향하던 에르헤 만잔은 갈수록 정신이 희미해져,
엘리스테 산 기슭에 이르러 결국 땅에 드러눕고 말았다.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지나가는 까치에게 부탁했다.

"내 친구들에게 샤라블린의 막강한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다고 알려주게.
그리고 네후르 넴슈르에게 어서 달려와 나를 치료해 달라고도..."

하지만 까치는 알을 낳기 직전이라며 그의 청을 거절하고 하늘 저멀리 날아가버렸다.
낙담한 에르헤 만잔은 이번엔 지나가는 까마귀를 불러 똑같은 청을 했다. 
까마귀는 자신도 알을 낳기 직전이라 바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부탁을 들어주겠다며 하늘 용사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까마귀에게 상황을 전해들은 하늘 용사들은 만취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엘리스테 산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용사들이 엘리스테 산에 채 닿기도 전에 적군과 마주쳤다. 
술에 취했지만 하늘 용사들의 용맹함은 그대로였다.
그들 앞에 샤라블린의 병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하지만 역시나 술이 문제였다.
타는 듯한 갈증에 하늘 용사들은 시시때때로 땅에 엎드려 계곡물을 들이켰다.
하지만 계곡물은 이미 샤라블린의 사악한 존재들이 흘린 피로 오염된 상태.
결국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한 하늘 용사들은 모두들 그렇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샤라블린의 병사들은 어려움 없이 게세르의 궁전을 휩쓸며 전리품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게세르의 아내 중 하나인 알마 메르겐이 마법을 부려 게세르로 변신한 채 적들 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런 게세르의 등장에 샤라블린의 병사들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이틈에 알마 메르겐은 수많은 적들을 화살로 쓰러트렸다.
그 모습을 본 샤라블린 칸들은 전생에 게세르에게 당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결국 칸들은 병사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는데, 이번에도 하라 소톤이 문제였다.
칸들 앞에 나선 하라 소톤이 소리쳤다.

"저것은 게세르의 마누라인 알마 메르겐이 변신한 것입니다. 잘 보십시요.
아녀자에게 겁을 먹고 퇴각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알마 메르겐의 화살도 다 떨어져갑니다."

아닌게 아니라 알마 메르겐의 화살통에는 이제 화살이 한대밖에 남지 않았다. 
샤라블린 칸이 다시 병사들에게 진군 명령을 내리자,
알마 메르겐은 자신의 아버지이지 대양의 주인인 우가 로손이 있는 바다 속으로 도망쳤다.

다시 약탈을 계속하던 샤라블린의 군사들을 제지한 것은 게세르의 또다른 아내인 우르마이 고오혼이었다. 마법의 까치과 까마귀가 샤라블린 칸의 아들인 에르헤 타이자의 아내로 점찍어두기도 한...
그녀를 본 샤라블린 칸들의 아들들은 서로 그녀를 차지하려고 덤벼들었지만,
모두다 우르마이 고오혼의 무예를 당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더구나 에르헤 타이자 본인까지...
그러자 샤라블린 칸들 입장에서는 이 전쟁을 더 이상 지속할 명분이 없어져버렸다. 
우르마이 고오혼을 잡아와 에르헤 타이자의 아내로 삼겠다는 것이 이 전쟁의 목적이 아니었던가.

샤라블린 칸들이 다시 병사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녀는 순간,
다시 하라 소톤이 나섰다.

"쪽팔리게 이대로 물러나실 겁니까?
이왕 이렇게 된거 우르마이 고오혼이라도 잡아가야 체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렇게 강한데, 누가 저 여자를 잡는단 말이냐?"

"병사 몇을 보내 우르마이 고오혼이 처치하게 하십시요.
그리고 그 순간 뒤에서 덮친다면 저 여자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우르마이 고혼은 샤라블린의 병사들에게 사로잡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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