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객은 과거에 떨어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가난한 살림에 멀리 떠나온지라 고향에 닿기도 전에 돈이 몽땅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오왕묘(사당)에 들어가 쉬는데, 다른 사람 하나가 다가와 따라오라더니 사당 안에 있는 오왕을 알현시켰다.
"흑의대에 병졸 자리가 비었으니, 이 사람에게 맡겨보면 어떨지요?"
오왕의 허락이 떨어지고 어객에게는 검은 옷 한벌이 주어졌다.
어객이 검은 옷을 몸에 걸치자 그는 어느새 까마귀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었다.
까마귀가 된 오객은 근처 호수를 항해하는 배의 돛대에 걸터앉았는데, 사람들이 고기 덩이를 던져주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이거 괜찮은 팔자로세.' 하며 어객은 이 까마귀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며칠 지나아 오왕은 어객에게 죽청이라는 암놈을 소개해주고 부부의 연을 맺게 했는데,
둘은 금술 좋게 잘 지냈지만 한가지 오객이 먹이를 찾을 때 너무 경계감 없이 다니는 것이 죽청의 불만이었다.
결국 어느날 만주족의 군대가 지나다 쏜 총에 어객은 가슴을 맞아버렸다.
죽청은 쓰러진 어객을 부리로 물고 달아났고, 다른 까마귀들은 화를 내며 거친 날개짓으로 만주족의 배를 전복시켜버렸다.
하지만 총상을 입은 어객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는데,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의 형상으로 오왕묘 안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3년뒤 오왕묘를 다시 찾은 어객은 음식들을 차려놓고 외쳤다.
"죽청! 여기 있다면 내려와 주시오."
하지만 까마귀들이 떼로 내려와 차려놓은 음식을 다 먹어치우더니 그대로 모두 날아가버렸다.
그길로 상경한 어객은 드디어 과거에 합격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되었는데,
다시 한번 오왕묘를 찾았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답게 어객은 어객은 돼지와 양을 잡아 풍성한 상을 차려놓고 참배했다.
그날 밤 호수근처 숙소에서 초를 켜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어여쁜 여자가 책상 위에 뚝 떨어졌다.
"별일 없으셨죠?"
"누-누구시오?"
"이 죽청을 몰라보시다니요."
한번 얼싸안고 정을 나누고 난 죽청이 말했다.
"저는 한수의 여신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이곳에 잘 오지못해요."
"그럼 나와 함께 남쪽으로 갑시다."
"아니에요. 당신이 나를 따라 서쪽으로 가시는게-"
갈 곳을 두고 의견을 좁히지 못한채 어객은 잠이 들었는데, 나중에 깨어보니 조금 전 잠들었던 숙소가 아니었다.
"이곳이 어디요?"
"한양입니다. 제가 있는 곳이지요."
어객은 하는 수 죽청과 한양에서 지냈는데, 몇달 지나자 고향이 그리워졌다.
"이곳에 있다보니 친지들과 소식도 끊어지고, 우리가 부부가 된 것을 알릴 수도 없구려."
"아무리 그러셔도 저는 갈 수 없습니다.
더구나 고향에는 당신의 본부인이 있는데 제가 설 자리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당신이 이곳을 별장처럼 오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죽청은 검은 옷을 내어주며 말했다.
"예전에 당신이 입던 옷입니다.
제가 보고싶을 땐 이옷을 입고 여기로 날아오시지요."
그렇게 어색은 흑의를 입고 고향과 한양을 오가며 죽청과 아이까지 낳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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