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양현에 주이단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성격이 호탕했지만 머리가 썩 좋지는 않았는지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도 도통 성과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한 친구 왈-
"자네는 담력이 쎄다고 늘 자랑질인데-
오늘 한밤중에 시왕전에 가서 왼쪽 복도에 있는 판관의 신상을 가져온다면 내 인정해주지."
다른 친구들도 모두 동의하며 가져오기만 하면 돈을 모아 한턱내겠다고 했다.
시왕전의 판관 상은 워낙에 흉악한데다 밤이 되면 실제로 그가 저승의 죄인들을 고문하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주이단은 개의치 않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주이단이 큰 소리를 내며 나타났는데,
과연 시왕전의 판관을 들쳐업고 온 것이었다.
판관을 본 친구들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벌벌 떨며 도로 가져가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주이단은 판관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말했다.
"제가 예의를 몰라도 대종사님은 잘 헤아려주십시요.
저희 집이 멀지 않으니 술 생각이 나시면 한번 찾아주시고요."
다음날 친구들이 한턱 낸 것을 낮부터 받아먹은 주이단은 거나하게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직 해가 채 지지도 않았다.
취흥이 사라지지 않은 그는 집에서도 혼자 술잘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내다보니 어제의 그 판관이 떡하니 서 있었다.
"아이고,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제 목을 가져가러 오신 것입니까?"
"아닐세. 자네가 술 한잔 하자고 하지 않았나?
마침 시간이 나서 술한잔 하러 들렀네."
그렇게 술잔을 주고 받은 주이단과 자신을 육씨라고 소새한 판관은 절친이 되었는데-
하루는 먼저 술에 골아 떨어진 주이단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육 판관이 그의 배를 가르고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아이고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아닐세. 자네가 머리가 나쁜 것은 다 이 심장 때문일세.
심장 한 쪽이 막혀서 피가 제대로 흐르질 못하니 그리된 것이지.
그래서 저승에 온 심장들 중에 좋은 것으로 하나 골라왔네."
말을 마친 육 판관은 그의 뱃속에 다른 심장을 넣고는
이리저리 바느질을 마쳤다.
주이단이 정신을 차리고 배를 보니 가느다란 금만 보일 뿐 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이상하게도 글이 술술 써지고, 읽은 글은 잊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해서 과거에까지 급제한 주이단은 어느날 육 판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육 판관님 재주가 남다르시니,
혹시 제 아내의 얼굴도 좀 바꿔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처가 심성도 곱고, 몸매도 그럭저럭 봐줄만한데 얼굴이 영-"
"어려운 일이 아니지."
잠시 후 육판관은 어디선가 피투성이가 된 머리를 하나 들고 나타나더니,
잠든 주이단의 처에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댕강 잘라버리더니,
새로 가져온 머리를 붙였다.
다음날 주이단의 처가 깨어나 얼굴을 만져보니 피가 묻어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얼른 세수를 해서 피를 씻어낸 그녀는 다시 한번 놀랐다.
엉망진창이었던 얼굴 대신
하얀 피부에 빨간 입술, 곧은 눈썹과 맑은 눈동자까지 갖춘 천하일색의 얼굴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다.
목에도 아무런 흔적이 없는데, 다만 목 아래와 위의 피부색이 확연히 달라 누가 붓으로 선을 그어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공으로 얻은 좋은 일에는 뭔가 마가 끼는 법.
옆동네 오씨네 딸이 미인이었는데,
대보름날 시왕전에 구경을 갔다가 한 괴한에게 겁탈당한 뒤 죽임을 당한 것.
그런데 다음날 보니 그녀의 시신에서 머리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옆동네 주이단의 아내가 얼굴이 바뀌었다는 소문을 들은 오씨는 하인을 시켜 얼굴을 보고 오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딸의 얼굴이라는 것이었다.
오씨는 그대로 관가에 달려가 주이단을 딸의 살인범으로 고발했고,
주이단의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이단이 육 판관에게 상의하니
"걱정말게.
내가 오씨의 딸에게 부모의 꿈에 가서 자초지종을 알려주라 하겠네."
그리고 그날 밤 오씨의 꿈에 나타난 딸은
"저는 양대년이란 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주이단은 육 판관에게 부탁해 제 머리를 가져가 자기 아내와 바꿨을 뿐입니다.
오히려 제 머리라도 살아남게 되었으니 고마워할 일이니, 그를 탓하지 마십시요."
딸의 말에 오씨는 관가에게 양대년이란 자를 다시 고발했고,
조사 결과 그의 짓입이 밝혀졌다.
그렇게 세월이 한참 지난 뒤 육 판관이 주이단에게 말했다.
"자네 죽을 날이 멀지 않았네."
"벌써요? 혹 이번에도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사람 목숨은 하늘이 정한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
"알겠습니다."
그길로 주이단은 관을 짜고 수의로 갈아입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그렇게 저승에 간 주이단은 육 판관의 추천으로 저승에서 벼슬살이를 하며,
이승의 아들과 손자까지 돌보았다는...
그가 아들에게 남겨준 글이 두 줄 남았다고 하는데-
"담력은 크게 갖되 마음가짐은 조심스러워야 하고,
계교는 빈팀이 없되 행동은 곧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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