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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세르 신화] 게세르의 첫번째 모험 - 벨루하 산의 오르골리 사간

강인태 2022. 10. 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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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 아내를 얻은 게세르는 아내들을 위해 하탄 강의 상류와 하류, 그리고 그 중간에 세 개의 궁전을 지어 희희낙낙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평화는 그를 약화시키고 게으르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게세르는 자신의 게으름을 깨닫고 자신의 운명이 적힌 신성한 책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책을 펴본 게세르는 깜짝 놀랐다. 책에 적힌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에...

 

"한 히르마스 텡그리의 둘째아들 벨리그테가 지상에 내려와 아바이 게세르가 된 까닭은 지상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악을 뿌리뽑기 위함이다.

그런데 게세르는 거짓된 평화에 취해 지혜는 녹슬고, 신체는 물러터져버렸다.

자신의 사명도 잊어버린 채...

하지만 이순간에도 어두운 숲의 지배자 오르골리 사간은 벨루하 산에서 세 봉우리의 생명을 먹어치우며 그 힘을 키우고 있다.

만약 오르골리 사간이 벨루하 산의 모든 생명을 다 먹어치운다면 지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그때는 아바이 게세르라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면 지상의 인간들에게는 견딜수 없는 오랜 불행이 닥쳐올 것이다."

 

책을 읽은 게세르는 자신의 한심함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게세르는 답답함에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세번째 아내인 알마 메르겐은 그 소리를 듣고 깜짝놀라며 게세르에게 물었따.

 

"왜 그러는 건가요? 당신의 고함소리에 온 사방이 다 불안해집니다."

 

게세르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벨루하 산의 오르골리 사간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을 따라 하늘에서 내려온 서른 세 명의 용사들을 불러모았다.

 

"낡고 녹슨 장비들을 서둘러 수선하라. 오늘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일 아침 태양이 떠올를 때면, 우리는 벨루하 산으로 출병할 것이다."

 

게세르의 명을 들은 그의 양아버지 사르갈 노욘과 게세르에게 아내를 번번이 빼앗겼던 하라 소톤도 같이 출병 준비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아들에 대한 걱정과 소명으로 진지한 사르갈 노욘과는 달리 하라 소튼은 여전히 게세르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다음날부터 몇몇일을 험한 길을 간 끝에 게세르의 부대는 벨루하 산에 도착했다. 그들은 우선 세봉우리 중 남쪽 봉우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 봉우리는 이미 처참한 상태였다. 모든 나무와 풀, 짐승들이 죽어버린, 생명을 찾아볼 수 없는 산이었다.

 

게세르는 두 번째로 서쪽 봉우리를 선택했지만 똑같았다.

 

마지막으로 북쪽 봉우리로 간 게세르는 다시 한 번 경악했다.

마지막 봉우리 역시 황폐할대로 황폐해져있었던 것이다.

게세르는 자신의 소명을 잊고 거짓 평화에 취해있었던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오르골리 사간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봉우리에 얼마 남지 않은 나무들을 한 그루씩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은 생명이 있었다.

 

게세르의 서른 셋 용사들은 조심스럽게 오르골리 사간에게 다가갔다.

오르골리 사간은 숲의 주인답게 태양과 달을 가릴 만큼 몸통이 컸다.

용사들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챈 오르골리 사간이 포효하자 그의 주위로 회오리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점점 바라이 거세지자 용사들은 전진하기는 커녕 창을 땅에 박고 밀려나지 않게 버티기조차 힘들었다.

 

이것을 본 게세르는 천마의 힘을 빌어 회오리 바람을 가르며 오르골리 사간을 향해 돌진했다.

바람을 뚫기 위해 게세르가 숨을 내 쉬자 마치 수십 마리 독사가 '쉭 쉭'하고 소리는 내는 것 같았다.

오르골리 사간에게 가까이 간 게세르는 천하를 진동시키는 고함을 지르며 그의 벌어진 입 속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게세르의 등에 걸린 활의 시위가 오르골리의 이빨에 걸려버렸다.

게세르는 말에서 떨어지며 오르골리의 혓바닥 위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 틈을 타 오르골리가 입을 움직이며 자신의 이빨로 게세를 짓이기려고 하지 게세르는 얼른 정신을 차리며 마법의 창을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세웠다. 흔들리는 괴물의 입 속에서 균형을 잡은 게세르는 침착하게 목구멍을 향해 나아갔고, 이윽고 오르골리의 목젓을 자신의 칼로 베어버렸다.

오르골리 사간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자 그 소리에 그만 창이 빠져 떨어지면서 게세르는 일촉즉발의 위험에 처했다.

 

그 순간 약해진 회오리 바람을 뚫고 서른 세명의 용사들이 공격에 나섰다. 부이데 울란은 오르골리 사간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여덟 개의 핏줄을 잘랐고, 사르갈 노욘은 떨어진 게세르의 창을 주워들어 괴물의 가슴을 마구 찔렀다. 다른 용사들 역시 하나 둘 괴물에게 달려들었지만 하라 소톤만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게세르는 벌써 괴물이 집어 삼켰는데, 뭣 하러 그리 열심히 공격하는 거요? 우리 목숨이라도 건져서 얼른 돌아갑시다."

 

그 순간 게세르는 괴물의 입 속에서 고함을 질렀다.

 

"부이데 울란. 잘하고 있지만 그렇게 마구잡이로 혈관을 잘라봐야 소용이 없소. 이 놈의 약점을 잘 찾아보시오."

 

부이데 울란은 눈을 더 크게 뜨고 복잡하게 얽힌 혈관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중에 유독 굵고 붉은 혈관이 눈에 띄었다. 그는 단 번에 그 혈관을 잘라버렸다. 그러자 오르골리 사간은 점차 힘이 빠지더니 결국 모로 쓰러져버렸다. 게세르 역시 괴물의 입에서 말을 탄 채 튀어나왔고, 서른 세명의 용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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