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신화/게세르 신화

[게세르 신화] 지상에 내려온 나란 고혼의 고초

강인태 2022. 8. 30. 07:38
반응형

우여곡절 끝에 지상에 내려오게 된 벨리그테는 마법 피리를 이용하여 가뭄의 원흉이었던 안개를 걷어내고, 창궐해 있던 질병들을 물세테 달라이(Mul sete dalai - 얼어붙은 맑은 물)로 내몰아버렸다.

 

지상에 평온을 가져온 벨리그테는 주문을 외우며 투게쉰 칸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르갈 노욘의 꿈 속으로 들어갔다.

사르갈 노욘은 꿈에서 엘리스테 산 정상으로 가서 그곳에서 노래하고 있는 종달새를 찾아 그 새를 고이 모셔다 동생과 결혼시키라는 계시를 받는다.

 

잠에서 깨어난 사르갈 노욘은 서둘러 사람들을 모아 엘리스테 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 다다르자 과연 종달새 한 마리가 노래하고 있었고, 그 소리는 세상을 진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르갈 노욘은 얼른 다가가 종달새를 잡아 들어보았지만, 종달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사르갈 노욘은 당황하며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사르갈 노욘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바로 아래 동생은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는 푸른 천리마를 타고 다니는 하라 소톤이었다.

그는 천성이 게으르고 교활했다.

세째인 센겔렌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을 즐겨하며, 쾌활하여 다른 사람들과 격의없이 지냈다.

당황한 형의 얼굴을 본 하라 소톤이 입을 열었다.

 

"형님, 힘으로 그 종달새를 움직이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제가 종달새를 놀래켜서 자기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도록 해보겠습니다."

 

하라 소톤은 화살을 꺼내 종달새 옆에 누워있는 개의 배를 무작정 찔러버렸다.

개가 놀라 움직이자 그 밑에는 갖태어난 일곱 마리 새끼들이 젖을 빨고 있었다.

하지만 종달새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자 하라 소톤은 종달새의 노란 배를 향해 화살을 찔렀지만 종달새를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하라 소톤은 이번엔 화살을 활시위에 올려 한껏 당긴 후 종달새의 머리를 향해 쏘았다.

화살을 종달새의 머리를 가까스로 비켜갔도,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던 종달새는 깜짝 놀라며 새차게 날개짓을 했다.

그러자 종달새의 깃털과 껍질이 벗겨지며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지상의 사람들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갖춘 채...

그녀의 아름다움에 산 정상에 모인 모든 남자들은 순식간에 탐욕스러운 눈초리로 바뀌며 이성을 잃어버렸다.

상황을 알아차린 사르갈 노욘은 재빨리 소리쳤다.

 

"이 분은 하늘이 센겔렌에게 시집보내라고 내려보낸 선녀올시다.

이 선녀는 말라비틀어지고 한 쪽 다리를 저는 암소와 이가 빠져버린 그릇, 그리고 찌그러진 솥을 예물로 준비해야합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 오두막에서 센겔렌과 살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모름지기 결혼하는 남녀는 서로 비슷비슷해야만 합니다.

외모도 출신도.

하지만 이 선녀의 아름다움은 지상의 것이 아니며, 그 출신 또한 천상이니 이대로 센겔렌과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녀에게는 약간의 불행이 필요합니다.

한쪽 팔을 비틀어 빼고, 한쪽 눈도 파내야 합니다.

또한 다리 한쪽도 부르트려야만 합니다. 그

래야 서로 격이 맞으며, 또한 센겔렌이 다른 사내들의 시샘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우리 투게쉰 마을에는 불행이 찾아오고야 말겠지요."

 

그러자 하라 소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할 아름다움이라면 망가뜨려버리는 것이 났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성큼 나서서는 나라 고혼의 팔다리를 비틀어버리고는 칼로 그녀의 눈을 파내어버렸다.

 

이렇게 아름다움도 건강한 신체도 잃어버린 나란고혼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센겔렌과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나도 당황한 탓에 슬퍼할 겨를도 없었던 나란 고혼은 고통과 피로에 떠밀려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잠들었던 그녀가 깨어나자 고통이 사라져 있었다.

자신의 몸을 돌아보니 팔도, 다리도, 눈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길 위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한 없이 걸었다.

그렇게 엘리스테 산의 꼭대기까지 걸어간 나란 고혼의 눈에 슈트그테 부르한과 한 히르마스가 나타났다.

그들의 모습에 나란 고혼은 눈물을 흘리며 뛰어가 그들에게 안겼다.

그러자 그제서야 그들은 나란 고혼을 쓰다듬어주며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자신의 희생이 어쩔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나란 고혼은 조용히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고, 그제서야 진짜 꿈에서 깨어났다.

팔과 다리, 그리고 눈에서 고통을 느끼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