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신화/그리스 로마 신화

판의 미로의 '판'에 대해서

강인태 2021. 6. 2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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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꽤 오래되긴 했지만,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는데, 그 소녀가 이리저리 해매며 왔다 갔다 하던 그 미로의 지배자인 판에 대해 좀 더 이해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오늘에야 우연히 '판'이란 신에 대한 몇줄을 접하게 됐고, "아 이런 존재였구나. 이걸 알았으면 조금 더 영화에서 풍기는 여러가지 메시지들을 좀 더 다양하고 깊게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 중의 한 명인 '판'은 어원 상으로는 '모든 것'이란 뜻이란다.

이름처럼 모든 것을 가지고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런 존재는 아니었고, 가축과 양봉을 곁에서 돕는 소박한 삶을 즐긴 신이었다.

무엇이든 알고,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누군가를 돕거나, 혹은 지배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며 아주 살짝 도와주는 그런 존재였다. 

자신의 삶도 그런 소박함 탓인지, 시링크스라는 요정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를 권능으로 취하지 않고, 단지 두 발로 쫓아갈 뿐이었다. 염소같은 발굽을 한 채로.

(생김새로 봐서는 판과 나니아에 등장하는 파우누스족의 툼누스는 친척뻘인듯)

여튼 판은 그렇게 시링크스를 쫓아갔지만, 시링크스는 싫다며 갈대로 변해버렸고, 판은 그 갈대를 이용해서 팬파이프를 만들어 오후의 휴식 시간에 여유롭게 불었다고 한다. 

하지만, 판에게는 이런 여류롭고 소박한 모습만 있는 건 아니고, 그의 오후 휴식을 방해하는 자들은 엄청난 공포에 공황상태가 되게 했는데, 패닉(panic)이란 말이 판에게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수간이나 강간의 이미지까지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다 아는 듯 하면서도, 막상 제대로 자기의 능력을 펼쳐서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한편 친절하고 소박한 듯 하지만, 사람들을 공포와 절망으로 몰아넣는 괴팍함을 가진 존재가 '판'이다. 

결국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구원을 갈구하며, 묘한 희망의 끈을 잡지만, 결국 그녀에게 돌아올 것은 또다른 절망뿐임을 그려내는데 있어서, 판이 주인인 그 미로가 가장 적절한 장치였을 것 같다. 

또 판은 어쨋거나, 미노스 왕의 미로에 있는 미노타우로스와도 또 생김새가 비슷하고, 그런 외모 탓인지 '사탄'으로 여기지기도 한다. 여러 판타지 게임의 최고 보스는 대부분 염소나 소 머리를 하고 있기도 하고.

결국 사람은 헛된 희망 끝에 찾아오는 절망에 가장 울림이 큰 상처를 받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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