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서술(Narration)과 행동(Action)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그 정의부터 살펴볼까요?
서술: 이야기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 비교적 소수의 단어를 사용하여 일정 기간 동안 발생했던 일을 통일성 있게 이야기 하는 것.
행동: 등장인물이 말하거나 움직이는 모든 것. 장면을 이루는 요소.
이렇게 정의하고 보니 어떤 한 이야기는
짧은 서술과 긴박한 행동으로 뼈대를 만들고, 묘사로 인테리어를 하는 건축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피츠제럴드는 초보 작가들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 중 하나가 서술해야할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거나,
행동으로 표현해야할 것을 서술해버리거나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읽는 사람 입장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살짝 살짝 잊어버리거나 착각한다는 것이겠죠.
그러면 어떤 때 서술을 이용해야하는 지를 볼까요?
(1) 일정한 기간 동안 흥미있거나 자극적인, 혹은 등장인물에게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 시간은 서술로 매워야 합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 중 '왕좌의 게임'에서 브랜의 장면 중 하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왕 일행은 새벽부터 사냥을 떠났다.
로버트 왕이 오늘밤 축제에 멧돼지 고기가 오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조프리 왕자가 로버트 왕과 동행했기 때문에 롭 역시 사냥팀에 낄 수 있었다.
벤젠, 조리, 테온, 로드릭, 심지어 왕비의 난쟁이 동생까지 모두 함께 갔다.
내일 아침이면 왕 일행은 남쪽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이번이 마지막 사냥인 셈이었다.]
이 장면이 브랜의 관점이 아니라 로버트 왕이나 롭의 관점이었다면,
작가는 아마 사냥을 떠나는 장면을 각자의 행동을 보여주며 자세하게 표현했을 겁니다.
그 준비 과정과 출발 과정을 통해 각 등장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거나, 미묘한 갈등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을 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브랜 입장에서는 그냥 그 일행에 끼지 못한 짜증나는 일일 뿐입니다.
그러니 간단히 몇 줄의 서술로 표현하고, 브랜에게 더 중요한 사건으로 바로 다가갑니다.
(2) 스토리를 지속해나가기 위해 서술을 이용합니다.
스토리를 지속해나간다는 것은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독자의 흥미를 떨어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죠.
피츠제럴드는 심지어 이런 제안을 합니다.
초고를 쓴 다음 몇 주 정도 원고를 내팽겨친 후, 객관적인 자세를 확보해서 다시 읽어보며 고치라고 말이죠.
그러면 자신이 행동으로 자세히 표현한 부분 중 독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간단히 서술하고 넘어갔는데,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니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나 장면이어야 할 수도 있겠죠.
그런 것을 발견하면 전자는 서술로, 후자는 행동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죠.
(3) 행동으로 표현하면 납득이 오히려 어려워지는 경우 서술을 이용합니다.
표현이 자세하면 할 수록 더 정교하게 설계되어야만 개연성을 가지게 됩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대립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지만...
그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어떤 일들은 오히려 간단히 서술하는 것이 훨씬 더 읽고 보는 사람 입장에서 납득이 쉬워질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의 추억'에서 나름 엘리트인 김상경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골 구석의 작은 경찰서로 오게됩니다.
이 이야기가 경찰 내부의 알력이나, 추락한 인간의 내면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가 잘 나가다 무엇인가에 의해 좌초되어서 시골 경찰서로 오는 과정을 자세히 다루어야겠죠.
하지만 이야기에서는 그것이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만약 감독이 어설프게 그가 시골 경찰서로 발령이 나게 된 경위를 카메라에 담았다면,
관객들은 '뭐 저런 일로 그렇게 되나?'하는 의구심을 가질 것이고,
그것을 설득력있게 다루었다면 러닝 타임이 30분은 더 길어졌겠죠.
그래서 그냥 "아, 그렇게 됐어요. 일이 좀 있어서... 같이 잘 해봅시다."
라는 정도의 대화로 처리하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은 '뭐 경찰에서 저런 일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게 되는 거죠.
(그간의 수많은 이야기에서 이미 접해봤음직한 상황이니까요...^^)
(4) 독자나 관객을 과거로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과거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야할 때가 있죠.
이때 회상 장면을 집어 넣어서 행동으로 보여줄 수도 있지만,
시시콜콜한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 것이라면 그냥 서술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야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위 '트라우마'를 표현할 때 이런 것이 많이 나오는데...
남자 기피증이 있는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라면...
여자가 남자 기피증이 생긴 원인이 상당히 중요할 텐데요.
그럴 때 여자의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거죠.
"어릴 때 양아버지가 밤마다 내 방에 찾아왔어. 엄마는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했고. 날 더러 어쩌란거야?"
이 말을 굳이 그녀가 양아버지와 엄마 사이에서 겪었던 일을 시시콜콜 행동으로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거죠.
이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가 아니고, 그녀의 복수극이라면 그 장면이 상세하게 행동으로 표현되어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이렇게 서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는 나레이션을 넣기가 좀 그러니.. 상당히 촌스러워지니까요.
대부분 대사 한두줄로 처리하죠.
"어디 갔다 왔어?"
"어- 시장에. 저녁에 매운탕이나 할까 하고."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나 그녀가 시장에서 생선과 무우를 사는 장면이 굳이 중요하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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