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는 읽고 보는 이에게 감정적 호소를 하기 위해서 아주 매우 많이 중요한 요소지만,
막상 작품을 만들어보면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뭘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순간을 수없이 겪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인상을 드러내기 위한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혹은 몇날 며칠을 머릿속과 사전과, 다른 글들을 찾아보며 방황하기 일쑤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카메라 감독과 함께 찾아다니곤 할 겁니다.
그럼 묘사의 정의부터 내려볼까요?
[독자의 감정적 반응을 일으켜 작중인물과 그 배경을 실감나게 하기 위해 오감에 호소하는 글쓰기]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독자의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은다면 쓸모없거나, 잘못된 묘사인 거죠.
단지
[K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해맸다.]
로 끝날 문장에서 K가 그 순간 느꼈을 오감을 표현하는 것을 통해 독자의 감정적 반응을 일으켜야 합니다.
모레의 색깔과 그것이 펼쳐진 모양을 통해서 K의 막막한 심정을,
입안에서 느껴지는 모레의 까끌한 느낌을 통해서 K에게 밀어닥칠 고통을,
불어오는 바람의 건조함을 통해서 목마름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겠죠.
피츠제럴드는 두 가지를 위해서 묘사를 사용하라고 합니다.
첫 번째, 작중인물, 배경, 장소, 사물 등에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서
두 번째, 작품의 사건에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서...
피츠제럴드가 예로 든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에서 짐 케이시라는 목사를 묘사하는 걸 예로 한 번 볼까요?
[길쭉한 얼굴이었다.
셀러리 줄기처럼 힘줄이 솟은 목 위에는 야위고 살이 말라부은 얼굴이 얹혀 있었다.
멍청해 보이는 눈알이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고, 눈꺼풀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입술은 두꺼웠다.
익살스럽다고 해야할지, 육감적이라고 해야할지. 툭 튀어나온 단단한 느낌을 주는 코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4505742
한 인물의 외모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 인물이 가진 성격이나, 살아온 나날들까지도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배경에 대한 묘사는 책보다도 영화 '배트맨'을 생각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고담'이라는 도시를 묘사하는데 러닝타임의 꽤 많은 분량을 할당함으로써,
그 도시에 '배트맨'이란 존재가 있어야만 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도시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거죠.
저는 영화 배트맨보다 그 프리퀄인 드라마 '고담'이 더 마음에 듭니다.
https://www.imdb.com/title/tt3749900/?ref_=ext_shr_lnk
이렇게 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묘사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건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한 묘사도 중요합니다.
이런 묘사는 잘 만든 무협지에서 아주 잘 표현되어 있죠.
제가 좋아하는 게임인 '위쳐(Witcher)'의 원작 중 하나인 '이성의 목소리'란 작품에서는
게럴트가 얼마나 초인적인 살인 무기인지를 드러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묘사를 사용합니다.
[“좋아. 그럼 한방 먹여주지!”
곰보 사내는 씩씩거리면서, 낯선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맥주잔을 쳐버렸다.
동시에 그는 뒤에서 어깨를 감싸고, 손으로 가슴을 가로지르고 있는 가죽 끈을 잡아 낯선 남자를 꼼짝 못하게 붙들었다.
뒤에 서 있던 또 다른 사내가 한방 먹이려고 주먹을 들어올리는 순간,
낯선 남자는 그 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말더니, 곰보 남자를 집어 던져 버렸다.
칼이 칼집 속에서 ‘쉭’ 소리를 냈고,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잠시 번쩍이는 듯 했다.
마치 암흑신이 강림한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손님 중 하나는 출입문을 향해 달아났다.
의자는 우당탕 넘어지고, 그릇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공포에 질려 입술을 파르르 떨던 술집 주인의 눈 앞에서,
얼굴이 칼로 베어진 곰보 자국의 사내가 카운터 끝을 손으로 붙잡은 채, 카운터 밑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바닥에 쓰러진 다른 두 명 중 하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온몸을 비틀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 여자의 히스테릭한 비명이 공중에 울려 퍼지며 귀를 찔러댔고,
술집 주인은 숨이 막힌 채 몸서리치다가, 곧 토하기 시작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4536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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