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공학/201 소설 작법

[소설 작법] 플롯과 스토리 라인 4/7 - 선행 쟁점

강인태 2021. 11. 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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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클라이막스인 주요쟁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선 선행쟁점이 필요합니다.

주요쟁점으로 인해 야기되는 클라이막스가 개연성을 갖도록 하는 것은 이 선행 쟁점을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죠.

 

'왕좌의 게임'에서 에다드 스타크가 결국 참수되거나 유폐될 운명에 처해지는 것은 그 이전의 선행된 쟁점으로 인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즉 에다드가 로버트왕이 남긴 서자의 존재를 찾아내고,

현재의 왕자 조프리가 로버트 왕의 유전적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세르세이와 충돌하게 된 것이죠.

라니스터 가문으로서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에다드 스타크를 없앨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선행 쟁점은 주인공이 주요쟁점을 해결하는 결정을 하게 하거나,

또는 작중의 다른 인물이 주인공에게 그 선택을 강요하도록 해야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길(La Strada, 1954)'에서 잠파노(앤소니 퀸)는 결국 젤소미나를 버리는 쪽으로 주요 쟁점을 해결합니다.

펠리니 감독은 이 주요 쟁점에 앞선 선행 쟁점으로 잠파노가 서커스단의 광대를 죽여버리는 사건을 배치했죠.

그 선행된 쟁점으로 인해 젤소미나는 완전히 넋이 나갔고, 잠파노는 그녀를 버릴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1251

 

천사같이 마음씨가 곱지만 어딘지 좀 모자라는 순박한 소녀 젤소미나(Gelsomina: 줄리에타 마시나 분)는...

movie.naver.com

 

예로 든 두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나 관객의 인식지점(명백한 목표 달성에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을 알게 되는 지점)은 이 클라이막스 선행 쟁점에서 나타납니다.

 

수사가 진척되고 그 진척 정도를 세르세이가 알게 되면서 독자는 에다드 스타크와 그 딸들의 안위가 위태로워질 것이란 걸 알게됩니다.

(세르세이와의 갈등에서 질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거죠.

물론 그것이 죽음이라는 충격으로 끝날 것이라는 건 끝까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광대를 때려죽이는 광경을 목격한 젤소미나가 미쳐가는 것을 보면서 관객은 잠파노가 그녀를 버릴 것이라는 걸 직감하게 됩니다.

 

이 선행된 쟁점의 설정에 있어서 가장 유의해야할 점은 선행쟁점이 그 이전에 일어난 역전이 불가능한 인과관계로 인한 결과여야 한다는 겁니다.

 

왕좌의 게임 - 무능한 왕을 사이에 둔 핸드라는 지위와 외척 세력 간의 알력과 그 속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에 따른 인과 관계

 

길 - 폭력적이며 자신의 화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잠파노, 여리고 어리석고 지능이 모자란 젤소미나, 그리고 그녀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말을 건내주는 광대.

이 세 사람의 관계는 잠파노가 광대를 해치는 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렇게 인과관계로 인해 역전될 수 없는 선행쟁점과 그에 따른 결과로서의 주요 쟁점의 해결방향이 결정되어야만,

작가는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력에 기반해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과관계에 따른 비가역성을 간과해서 감정에 의존함으로써 작품의 질을 떨어트린 예는 수도 없이 많죠.

영화 '부산행'은 아버지와 할머니를 대하는 싸가지.. 그리고 그런 가정환경에서는 있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 공유의 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들이 관객을 짜증스럽게 합니다.

'곡성'은 아예 이 인과관계를 다 감추고는 '니가 한 번 찾아볼래?'라는 나쁜 태도로 관객을 대함으로써 관객을 지치게 합니다.

 

지금까지 독자나 관객의 인식지점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이젠 작중 인물의 인식지점에 대해서 알아보죠.

작중 인물의 인식지점이란 말그대로 독자나 관객이 아니라, 작중인물이 진실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을 말합니다.

 

왕좌의 게임에서 에다드 스타크가 가족들을 데리고 윈터펠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것을 시청자는 에다드보다 훨씬 더 빨리 알아채죠.

아무리 늦어도 에다드가 반역을 자백하는 순간 말이죠.

그런데 에다드는 자신의 실패를 조프리의 손짓을 보고서야 깨닫습니다.

 

이렇게 작품을 보는 사람의 인식지점과 작중 인물의 인식지점은 서로 어긋날 수도 있고, 또 많은 경우 거의 동시에 배치되기도 합니다.

플롯형의 경우 독자의 인식지점이 가능한 뒤로 미루어지게 되니,

작중 인물의 인식 지점도 미뤄지면서 둘이 거의 동시에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연결되는 스타일의 작품은 프롤로그에서 작중 인물이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 알고 있는 진실의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지는 지점은 거의 일치하게 됩니다.

 

스토리라인형 작품의 경우 한 사건이 진행될 때마다 주인공은 작은 진실의 순간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게 쌓인 진실의 순간들이 퍼즐을 완성하며 자신이 맞이한 주요 쟁점의 결과를 알게되는 순간이 찾아오겠죠.

이런 경우 대부분 독자나 관객의 인식지점이 주인공의 그것보다 뒤에 배치되게 마련입니다.

당연한 것이 스토리라인형의 경우 어떤 사건으로 인해 다음에 일어나 일이 궁금해야하는데,

그 결과를 작중인물보다 독자나 관객이 먼저 알면 곤란하겠죠.

오히려 주인공은 그 결과를 알고 어떤 행동을 하는데...

독자나 관객은 "제가 왜 저러는거지? 저렇게 해서 어쩔려고?"라는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겁니다.

'나우 유 씨 미' 나 '오션스 일레븐'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죠.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92011

 

나우 유 씨 미 : 마술사기단

1년 전만 해도 무명이었던 길거리 마술사 '포 호스맨'은단 3초만에 파리 은행의 비자금을 통째로 털어 ...

movie.naver.com

 

주인공들은 자기들이 최종적으로 명백한 목표를 달성할 것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모든 퍼즐들을 다 제시받은 다음에야 진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심지어 실패한 것으로 독자나 관객을 속이기도 하죠. Fake 클라이막스를 배치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작가는 독자의 인식지점과 작중 인물의 인식지점의 선후 배치를 통해서

보는 이의 호기심을 쥐락펴락하며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특히 피츠제럴드에 따르면 스토리라인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쓸 경우,

작가는 작품의 선행쟁점과 클라이막스, 

독자와 작중인물의 인식지점 등을 완전히 구상한 후 이야기를 써나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스토리라인형 소설의 경우 작가 스스로가 작품에 등당하는 캐릭터(Character)에게 소유당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작품을 써나가는 중에 캐릭터들이 스스로 자가발전해서 거꾸로 작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캐릭터에 따라 작가가 미처 의도하기도 전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기유발력이 사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캐릭터 스스로가 강력해져서 순식간에 쟁점들을 해결해버리기도 한다는거죠. 

 

그래서 플롯과 스토리를 전개하기 전게 구상해두었던 클라이막스가 적절하지 않게 될 수도 있고,

또 클라이막스가 오히려 선행쟁점이 되고, 또다른 주요쟁점을 낳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작가가 캐릭터를 허수아비처럼 밋밋하게 만들지 않는 이상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스토리라인형 뿐만 아니라 플롯형에도 어느 정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제 작품을 쓰면서 꽤나 길고 상세한 스토리를 끝까지 만들어 놓고 살을 붙여나갔는데...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뒤에 있어야 했던 사건이 앞으로 나오고, 

꼭 필요해보였던 사건들을 생략해야하기도 하고... 

클라이막스였던 놈은 오히려 다른 사건을 위한 밑밥 정도로 자리잡고... 

그렇게 되더라구요. 

결국 반 이상 새롭게 만들어야만 했죠. ㅠ.ㅠ

 

그래서 어쩌면 이런 방법이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한 눈에 고개를 끄덕일만한 간략한 스토리라인을 잡는다.

클라이막스를 어떻게 진행해서 마무리할지에 대해 아주 단순히 말이 될 것만 같은 정도만 잡아둔다.

작품을 써나간다.

완벽을 기하진 말고, 캐릭터를 살리고 염두에 두면서...

클라이막스와 선행분규를 제대로 구상한다. 

다시 처음부터 쓴다..

나름 완벽을 기하며.. 

독자 혹은 관객의 인식지점, 캐릭터의 인식지점까지 제대로 배치하고, 필요하면 클라이막스와 선행쟁점을 다시 구상한다.

또다시 쓴다.

문체나 사소한 재미까지 신경써서-

어렵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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