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에 있는 일련의 사건들의 선두에 설 한 사건을 주인공의 성격 밖에서 찾았다면,
이제 소설을 써나갈 준비가 된 셈입니다.
- 살인의 추억: 연쇄살인범의 살인. 주인공인 송강호와 김상경은 연쇄살인범이 저지르기 시작한 범죄행각을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인지하죠. 송강호의 경우 자신이 그 사건을 맡게 되는 것조차 자신의 의지가 아니고...
- 엑스맨 아포칼립스: 아득한 옛날 돌연변이의 시초쯤 되는 강력한 존재가 자신을 다른 존재로 전이시키려했지만, 몇몇의 배신으로 실패한다. 하지만 완전한 죽음에 이르진 않은 채 땅속에 묻힌다. 현재의 엑스맨들은 이 사건에 아무런 영향을 행사할 수 없죠.
- 프리즌 브레이크: 무죄인 형이 감옥에 갖힌다. 석호필의 형의 유죄 선고에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베르세르크: 막강한 이계의 힘을 빌려 초월적 존재가 될 수 있는 베헤리트가 세상에 풀렸다. 가츠는 이 베헤리트의 존재 자체도 몰랐었죠. 하지만 가츠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전 세계에 수많은 고통을 몰고 옵니다.
이렇게 소설이 시작되었다면, 피츠제럴드는 출판사나 영화사에서 단번에 거절할만큼 지루하게 작품을 서술하라고 합니다. 일단은 말이죠.
작품의 서술을 위해서 작가가 첫번째로 해야할 일은
선두에 선 사건으로 인해 야기되는 주요 쟁점(Major Complication, 책에서는 대분규라고 번역했는데 너무 낯선 단어라-)를 만드는 일입니다.
가장 크고 주요한 충돌지점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라는 것이죠.
- 살인의 추억: 진범으로 의심되는 박해일과의 충돌.
- 엑스맨 아포칼립스: 고대의 존재와 엑스맨들 간의 충돌.
- 프리즌 브레이크: 사실 시즌1을 만들 때만해도 마지막 탈출 과정에서의 감옥 시스템과의 충돌이었을텐데... 시즌이 거듭되면서 컴퍼니와의 충돌로 바뀌죠..ㅠ.ㅠ
- 베르세르크: 아직 연재가 되고 있는 작품이라(완결이 되기는 될지도 좀 의심스럽습니다만...ㅠ.ㅠ) 단정하긴 이르지만, 아마 베르세르크와 마왕이 되어버린 그리피스의 충돌이겠죠.
작품 전체를 관통할 주요 쟁점이 정해졌다면, 이제 그 쟁점을 만들어가고 해결할 작은 쟁점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쯤되면 사건과 쟁점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야할텐데요...
사건은 그야말로 일어난 일인거고... 쟁점Complication은 피츠제럴드의 정의에 따르면
"등장인물에게 우연히 발생한 사건으로, 등장인물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는 쪽을 택했을 사건. 즉 바람직하지 못한 사건."
을 뜻한다고 합니다.
'살인의 추억'의 추억을 예로 든다면 송강호와 송재호의 입장에서 자기 관할 지역에서 살인이 일어난 거죠.
그냥 대충 편하게 형사질이나 하고, 조용히 은퇴하고 싶은 두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살인자가 살인을 다른 지역에 가서 저지르게 하고 싶었을 겁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주요 쟁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이 다음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주인공의 주요 동기 유발력은 명백한 목표에 도달하는데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
인간과 돌연변이들 사이의 평화를 유지해야만하는 찰스 자비에는 돌연변이의 세상을 꿈꾸는 돌연변이, 혹은 돌연변이를 없애려고 하는 인간들 사이의 균형을 무사히 유지할 수 있을까요? 천신만고 끝에 단기적인 균형을 가져옵니다. 속편을 만들어야하니까...
무죄인 형과 자신이 원래 누려야할 삶을 되찾아야만 하는 석호필은 형과 함께 무사히 감옥을 탈출할까요? 결국 탈출하지만 이제 도망자로서의 또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고, 사랑하는 여인의 영혼을 되찾아야만 하는 가츠는 베헤리트를 가진 초월적 존재에 맞서서 이길 수 있을까요? 아직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네요.ㅠ.ㅠ
이 주요 쟁점이 한 작품에서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는 두 가지로 설정될 수도 있겠죠.
또 다른 탈옥극인 '쇼생크 탈출'에서는 주인공의 무죄입증과 탈옥이라는 두 가지 주요 쟁점이 순차적으로 배치됩니다.
주인공이 두 명 이상인 경우에는 각 주인공이 같은 쟁점을 두고 서로 다른 동기유발력을 갖기도 하겠죠.
살인의 추억에서 어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송강호는 사건을 종결시키는 것이 목표지만,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며 범인을 잡는 것에 집착한느 김상경은 진범을 잡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렇게 설정되면서 '살인의 추억'은 살인범과 형사 간의 쟁점 뿐만 아니라,
진범을 잡으려는 목적과 빨리 사건을 종결시키려는 목적이 충돌하게 되죠.
그리고 관객들은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려는 목표 때문에 진범을 잡으려는 목표의 달성이 지연되거나 실패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 측면에서 살인의 추억은 피츠제럴드식 분류에 의하면 '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플롯형 작품이 됩니다.
피츠제럴드는 플롯을 중심으로 한 작품에서는 발생된 사건에 강조가 주어지며, 주인공의 성격은 처음 상태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플롯형 소설은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결이 '왜냐하면'으로 이루어집니다.
대충 대충 감각적으로 수사하는 송강호... 이 사람은 왜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되었을까?
또다른 살인이 일어났다. 살인범은 왜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 그 대상을 선택한 걸까?
도저히 범인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피의자로 잡혔다. 그런데 그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다. 어떻게 된 걸까? 진짜 범인이 아닌 건 미루어 짐작되는데...
라는 식으로...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는거야?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가능한 뒤로 미룹니다.
그리고 김상경도, 송강호도, 송재호, 범인도 누구 하나 영화의 끝에 가도 그 성격 그대로입니다.
스토리 라인을 중심으로 한 작품은 주인공의 성격이 강조되며, 그 성격은 발전하거나 분열되면서 소설의 시작 지점과는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결이 '왜냐하면'이 아니라, '그리고'로 이루어집니다.
별로 좋은 스토리는 아니지만 워낙에 단순해서 예로 들기 좋은 걸 한 번 살펴보죠.
영화 '부산행'입니다.
뭔가 좋지 않은 물질이 유출되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거야?
그런데 근처에 있던 짐승이 죽었었는데 도로 살아났다. 저거 사람한테도 퍼지는 거 아냐?
서울 사는 아이가 엄마에게 가겠다고 땡고집을 피운다. 그럼 아빠는 아이를 혼자 보낼까? 따라 나설까? 바이러스는 주인공들한테 어떻게 다가가는거야?
기차는 칸칸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그들은 좀비의 공격에 어떻게 대처할까?
라는 식으로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궁금하게 만들며 진행됩니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가능한 뒤로 미루죠...
그리고 공유는 냉혹한 펀드매니저에서, 필사적인 아빠로, 심지어 타인을 도우려는 정의의 사도로 변해갑니다.(정말 맘에 안드는 변화긴 하지만..) 또 초밉상인 딸은 아빠를 점점 달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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