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법] 제2장 - 이야기의 취지와 작가의 태도

1. 작품을 쓰려는 취지(Intention)

 

어떤 작품을 실제로 써나가기 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태도와 취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명확한가에 대한 판단 기준은 그것을 한 두 줄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구요.

 

작품에서의 '취지'란 행동으로 표현되는 심리적 필연성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등장인물들이 어떤 마음으로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을 작품으로 쓰려고 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됩니다.

 

• 봉준호 감독은 연쇄살인범을 쫓는 두 형사의 끈질긴 노력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살인의 추억'을 만들었고,
• 이문열은 여전히 조선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한 남자의 돈키호테적 망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황제를 위하여'를 만들었으며,
•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온 탓에 평화로운 생활을 갈구하지만, 막상 그 평화로운 상태에 적응하지 못해서 다시 전장을 찾는 용병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에어리어 88'이죠.
• 영원한 고전인 '삼국지'는 한 나라가 무너지고 위, 촉, 오 삼국이 정립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군웅들의 활약 상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탄생했습니다.

 

2. 취지에 대한 작가의 태도(Attitude)

취지가 정해지고 나면 작가는 그 취지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작품 전반에서 강력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부산행' 같은 경우(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긴 했지만),

부모, 특히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확고한 태도를 끝까지 유지하죠. 

'살인의 추억'에서는 형사는 범인의 범죄행각을 멈추어야만 한다는 강력한 확신을 유지합니다.

이런 태도 덕분에 형사를 그만둔 상황에서도 '살인의 추억'에 집착하는 송강호 장면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살아오다 갑작스럽게 고립된 사람은 '충'이란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이라는 확신은 '황제를 위하여'를 끌고가는 힘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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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를 위하여 1

 

이것은 작품 전체를 대하는 자가의 태도에도 적용되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도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에서는 유비는 한 나라 황실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조조는 어떤 상황에서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만 한다는 신념을 죽을 때까지 놓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나관중-박종화의 삼국지는 충심과 충절은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한다는 태도를,

이문열은 역사적 상황을 투영한 나름의 객관적 잣대를 들이대어야 한다는 태도를 유지합니다.

 

 

3.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명시적인 목적(Purpose)

작품을 쓰려는 취지에 대한 태도는 결국 그것을 통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던지고 싶은 메시지라고 할 수도 있겠죠.

 

• '살인의 추억'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 '황제를 위하여'는 어떤 가치관이든 존중받을 자격이 있지만 그것으로 비롯된 집착은 덧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 '삼국지'는 어떤 일이든 명분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 '에어리어88'은 전쟁은 그것이 계속되든 아니든 인간성을 파괴시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썼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적이 명시되고 나면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갈지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예를 들자면

 

• 이야기의 배경은 연쇄살인이 시작된 시골 마을이다.
•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형사들은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주인공(송강호, 김상경)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환경과 갈등을 겪는다.
• 선과 악은 대립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수단으로 인해 그 경계가 모호하다.
• 등장인물들은 목적에 맞는 동기유발력을 가져야 한다. 승진을 위한 수사 마무리,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정당하지 못한 수단, 강박관념을 해소하기 위한 살인, 생존을 위한 저항... 패배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퇴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