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의의나 역할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정말 다양하고도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신의 존재와 경배하는 것 자체가 신성한 행위이자 인간의 의무라고 할 테고,
어떤 통치자에게는 정치를 안정시키는 수단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통치자에게는 사회 불안을 야기시키는 제거 대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에게는 죽음을 두려워한 인간이 위안 삼아 만들어낸 수단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판타지에서 종교의 역할은 조금 다르다.
작품 속에서 어떤 인물의 캐릭터 설정에 따라, 그 개인이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 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 자체가 판타지 세계에서, 특히 그 종교가 퍼져있는 세력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A. 종교의 3가지 속성
판타지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있어서 가장 먼저 결정되어야 하는 것은 종교 자체가 가시적인 어떤 신성한 힘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이때 신성한 힘이란 실제로 그 세계의 여러 상황에 신이 등장해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주술적 힘의 원천으로 신앙심 자체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직접적으로 인간사에 관여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으며, 대
부분의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게임에서 종교적인 힘에 의존하는 성직자 직업 역시 단골로 등장한다.
또한 레이더스처럼 어떤 살아있는 생명체를 통해서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물건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소유자에게 힘을 부여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형벌을 가하는 방식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그 다음 결정되어야 할 종교의 속성은 생명체들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견지하느냐 하는 색채다.
어떤 종교는 모든 생명체에 대해 평등하게 존중을 하는 극단적인 박애주의를 견지하는가 하면,
또 어떤 종교는 신격화된 어떤 존재를 제외한 모든 생명을 경시하는 성향을 가질 수 있다.
혹은 해당 종교에 대해 신앙심을 가진 존재에 대해서만 존중하고, 그렇지 않은 쪽에 대해서는 해악시하는 성향을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생명 존중의 범위와 수준에 따라 어떤 종교의 색채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종교의 색채를 상징하는 색깔로는 보다 많은 생명을 존중하는 쪽은 백색을,
그렇지 않은 쪽이 흑색을 주로 설정하지만, 그거야 판타지를 설계하는 사람의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세 번째 결정되어야 할 속성은 동일 종교를 가진 존재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사회 권력화되었느냐 하는 문제다.
이들이 권력화되는 양상도 두 가지로 크게 나뉘는데,
하나는 능동적으로 세력을 형성해서 권력 집단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능동적으로 참여하진 않지만 종교적인 어떤 행위나 존재가 박해를 받았을 때는 종교를 가진이 전체로부터 박해의 주체가 배척당하는 수동적인 권력화가 있을 수 있다.
종교 개혁 이전의 중세 서양의 기독교 성직자들은 매우 능동적인 권력화를 지향했고,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은 수동적인 태도를 견지하지만 종교적인 박해에 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청난 반발을 잠재하고 있다.
또한 권력화된 종교 집단이 기존의 권력 집단, 즉 정치 권력, 군사 권력, 산업 권력에 대해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그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에 대한 설계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종교집단은 음모 집단의 일원으로 전체 사회를 지배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종교집단은 종교적인 힘을 기반으로 기존의 권력에 대항해서 저항군을 형성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시적인 힘의 발현 여부, 종교의 색체, 사회적인 권력화의 수준 등 3가지가 결정되면 해당 시점에서 그 종교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계가 완료된다.
B. 종교의 침투율(Penetration) 설계
앞서 언급한 세가지 속성을 설정하고 나면, 이제 어떤 세력이 전반적으로 종교로부터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 설계될 차례다.
우선은 세력 내에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부터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가 없는 경우에도 자연적으로 그런 것인지, 통치 세력의 강압에 따른 것인지에 따라 사회적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
자연적으로 종교가 사라졌거나 탄생하지 않은 세력을 설정한다면, 그 세력이 그렇게 된 그럴듯한 이유에 대한 설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엄청난 의학의 발달이나 선천적인 유전인자로 인해 지나치게 긴 수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따라서 종교의 필요성이 별로 크지 않다는 설정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종교의 존재 이유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공감을 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종교가 없는 상황을 통치 세력의 강압에 의한 것으로 가정한다면, 두 가지 설정이 추가로 필요하다.
하나는 지배층이 종교를 배척하는 이유에 대한 설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토착 종교의 반발이다.
표면적으로는 종교활동을 하지 않지만, 비밀스럽게 종교활동을 하거나 신앙심만은 유지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설정이 필요한 것이다.
종교가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면 그 다음 단계는 단일 종교냐 아니면 복수의 종교가 세력 내에 퍼져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사회가 하나의 종교만 가지고 있는 경우 역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제도적 압력에 의해 강제된 것인지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하나의 자연스럽게 하나의 종교만 있다면 그렇게 된 이유가, 강압에 의한 상황이라면 나머지 종교의 반발 양상에 대한 설정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면 단일 종교든 복수의 종교든 각 종교가 세력 내에 얼마나 퍼져 있느냐 하는 것이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즉 세력 내 지적 생명체의 몇 %가 그 종교에 대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과, 신자들의 신앙심의 깊이는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하는 것이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심의 깊이는 신앙이 실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느냐, 삶의 가치관 형성 정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 아니면 단순한 소셜 네트워킹과 정신적 위안을 얻기 위한 정도이냐 하는 것으로 대별해볼 수 있다. 물론 같은 종교를 가진 경우도 개인별로 깊이의 차이가 있는 법이지만, 개인의 성향에 대한 설계는 개체에 대한 설계에서 다루어질 내용이고, 세력 내 전반적인 종교의 분위기라는 것을 설정하는데 있어서는 개인차는 무시해도 무방할 듯하다.
또한 여러 개의 종교가 있을 설정인 경우, 종교간의 관계와 갈등 양상에 대한 설계 역시 세력 간의 관계를 설계하는 과정에 준하는 수준으로 설계 되어야 한다.
"이 블로그에 정리된 내용은 '상상력 공학 101'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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