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신화/중국 신화

중국의 홍수 전설과 복희

강인태 2021. 6. 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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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지역에나 세상의 생명이 거의 멸종에 이르는 홍수 전설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중국 역시 꽤 흥미로운 대홍수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초월적 존재에 의한 복수와 그 와중에 살아남은 신인류의 기원이라는 구조는 서양의 이야기들과 비슷하지만, 

홍수를 맞은 인간의 자세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아즈텍의 홍수 신화

옛날옛날 태고적에...

한 용감한 사나이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일을 하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큰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여름철에 갑작스런 폭우가 종종 내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그는 폭우에 대비하기 위해 평소에 푸른 이끼를 걷어다 말려두었는데, 비가 올 때 이 푸른 이끼를 지붕 위에 깔아두면 비가 집안으로 새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심상찮은 하늘을 본 그는 서둘러 준비해뒀던 이끼를 지붕 위에 깔아두고는 두 아들 딸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대비 덕분에 퍼붓는 비에도 불구하고 사나이는 아이들과 함께 별다른 걱정 없이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비는 잦아들 기색 없이 연신 더 강하게 퍼부어 댔고, 그 기세가 평소 여름에 내리던 폭우와 사뭇 달랐다. 

사나이는 날씨를 관장하는 하늘의 뇌공이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대로 방치하면 자칫 큰 재해로 이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리 만들어놓았던 쇠로 된 커다란 둥우리를 꺼내 처마 밑에 놓아두고, 

손에는 짐승들을 잡을 때 쓰던 쇠스랑을 들고 그 앞을 지켰으니, 

그 모습은 마치 덫을 설치하고 무기를 든 채 짐승을 기다리는 사냥꾼의 그것과 흡사했다.  

 

곧이어 번개가 치고 귀를 찢는 듯한 우레소리가 들리더니, 푸른 얼굴을 한 뇌공이 손에 도끼를 들고 지붕에 내려앉았다. 

그의 등 뒤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고, 눈에서는 사나운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나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단번에 쇠스랑으로 뇌공의 허리를 찍어 눌러 쇠 둥우리로 처넣어버렸다.  

뇌공을 사로잡은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내 너를 잡았구나. 그 둥우리 속에서도 재주를 부릴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사나이는 아이들에게 뇌공을 감시하게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그는 뇌공을 죽여 젓갈을 담가 먹기로 결정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젓갈에 넣을 향신료를 사러 시장에 갔다 와야 했다. 

그는 집을 나서며 아이들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절대 물을 주면 안 된다. 명심해." 

 

사나이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멀찌감치서 뇌공을 감시했는데, 곧 뇌공이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자아냈다. 

아이들은 쇠둥우리 가까이 다가가 그 이유를 묻자 뇌공이 대답했다.  

 

"어제 붙잡힌 뒤로 물을 한 모금도 먹지 못했더니 너무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구나. 물 한 그릇만 다오." 

 

"아빠가 절대 물을 주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사내 아이가 단호하게 거부했다.  

 

"한 그릇이 안 된다면 조그만 잔에 한잔만이라도 주면 안되겠는가?" 

 

"안 돼요. 그랬다간 아빠한테 혼날 거에요." 

 

다시 한번 사내 아이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 정말 목이 말라 죽겠구나. 그러면 부엌에 그릇 닦는 솔에 물을 묻혀 몇 방울만이라도 다오." 

 

말을 마친 뇌공은 아예 입을 벌리고 기다리며 아이들에게 호소했다.  

나이가 어린 여자아이는 그 모습에 연민을 느끼며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우리 몇 방울만 줄까? 몇 방울만 주면 아빠도 모를 거야." 

 

오빠도 몇 방울만 주면 별 탈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솔에 물을 묻혀와서 뇌공의 입에 몇 방울 떨어뜨려줬다.  

물을 몇 방울 마신 뇌공은 기뻐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고맙구나 얘들아. 하지만 내가 이 둥우리에서 나가야겠으니 저 멀리 물러나있거라." 

 

아이들은 갑자기 살아난 뇌공의 기세에 놀라 집밖으로 뛰쳐나갔는데, 곧이어 땅이 무너질듯한 소리가 들리며 뇌공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본 뇌공은 자신의 이빨을 하나 뽑아 아이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것을 땅에 심어두면, 나중에 당한 재난을 피할 수 있을 거다." 

 

사나이가 젓갈을 담을 향신료를 사서 집에 돌아와보니 뇌공은 이미 도망쳐버렸고, 아이들은 울먹이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나무라기보다는 이후의 상황에 얼른 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달아난 뇌공이 재대로 되니 재난을 지상으로 보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밤낮으로 일해서 쇠로 만든 배를 한 척 준비했고, 아이들은 뇌공이 주고 간 이빨을 땅에 심었다. 

이빨을 심은 자리에서는 금새 싹이 나더니, 하루 만에 커다란 조롱박이 열렸다. 

아이들이 톱을 가져와 조롱박의 뚜껑을 따보니 그 속에는 수많은 이빨이 들어차 있었는데, 그것들을 다 파내고 나니 조롱박은 딱 두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뇌공이 탈출한지 사흘 째 되던 날 사나이의 배도 완성되었는데, 때마침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비바람이 몰아쳤고, 땅에는 물이 넘쳐 홍수가 나서 언덕과 산을 뒤덮어 버렸다. 

하지만 쇠로 만든 배를 준비해둔 사나이는 홍수가 난 물 위에 떠 있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아이들 역시 조롱박 속에 들어가 아버지와 함께 물 위로 둥실둥실 떠올라 있었는데, 천지를 뒤덮은 물이 점점 불어나 하늘과 닿을 지경에 이르렀다.  

 

조롱박을 탄 복희 남매

배를 몰아 하늘의 문으로 다가간 사나이는 세차기 문을 두드려댔다. 

어찌나 세게 문을 두드려댔는지 하늘 세계의 아홉 층에 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큰 소리에 놀란 천신들은 두려워하며 얼른 수신들에게 명을 내렸다.  

 

"급히 지상의 물을 빼시오. 이러다 하늘이 무너지겠소." 

 

수신들이 명을 받아 이행하니 비가 그치고 지상은 물이 빠지면서 산과 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이 급하게 빠지면서 사나이가 타고 있던 배는 땅으로 처박히면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사나이 역시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렸고, 그의 이름조차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다.  

 

한편 조롱박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푹신푹신한 조롱박의 껍질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세상 천지에 둘만 남은 것을 깨닫게 된다. 

오빠는 동생에게 결혼하자고 했지만, 동생은 남매간에 결혼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둘밖에 남지 않은 세상에서 다른 방도가 없었다. 

여동생은 오빠에게 자신을 따라잡으면 결혼해주겠다고 제안하며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재빠른 여동생을 잡지 못하고 헤매던 오빠는 큰 나무를 빙빙 돌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니 여동생은 오빠의 품 속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없던 둘은 이제 서로를 부를 이름이 필요했고, 그들은 조롱박에서 살아남았으므로 이름을 남자아이는 복희가(伏羲哥), 여자 아이는 복희매(伏羲妹)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둘은 부부가 되어 살다가 동생의 배가 불러오더니 아이가 아닌 고기 덩어리를 낳게 되었다. 

기이하게 여긴 부부는 이것을 종이에 싸서 하늘로 이어진 사다리를 올라 하늘 세계로 가져가기로 했는데, 사다리를 오르던 중 그 고기 덩어리를 놓쳐버렸다. 

덩어리가 찢어지며 사방에 흩어져 떨어졌는데, 살덩어리가 떨어진 자리에서 사람이 태어났고, 지상에는 다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제우스의 홍수나 노아의 홍수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차이가 있다면 인간과 초월적 존재의 관계가 중국의 경우에 상당히 대등하게 그려진다는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재난이 생기기 전에도, 재난 중에도, 그 이후에도 초월적 존재를 두려워하고, 살아남게 해준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미리 대비하고, 당당히 맞서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서양의 신화에 등장하는 초월적 존재는 신앙의 대상이었던 반면에 동양의 신화에 등장하는 초월적 존재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고, 오히려 그것을 극복한 주체나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 인간을 신앙 혹은 공경의 대상으로 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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