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골 장터에 낡은 두건을 쓰고 다 떨어진 솜옷을 입은 도사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배를 팔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배 하나만 달라고 구걸했는데,
장사치는 매정하게 그의 청을 거절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
"수레에 배가 몇백 개나 있는데, 고작 한 개도 안 주면서 어찌 그리 화를 낸단 말이요?"
도사의 말에 옆에 있던 사람이 제일 못 생긴 배를 하나 골라서 줘버리라고 했지만,
배 장수는 시끄럽다며 듣지 않았다.
도사 역시 뻔뻔하게 배 하나만 달라며 배 장수에게 엉겨붙으며 실랑이가 길어지자,
옆 가게 점원 하나가 참다못해 자기 돈을 털어 배를 하나 사서 도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도사는 감사의 인사를 하며 주위에 모여든 구경꾼들을 향해 외쳤다.
"배 장수가 이렇게 인색하게 구니, 제가 여러분에게 배를 접대하겠습니다.
근처 어르신들도 모두 모여주세요."
도사는 배를 냉큼 배어먹더니 구덩이를 파고 씨를 그 안에 넣었다.
흙을 잘 덮어준 도사가 뜨거운 물을 그 위에 뿌려주니
눈깜짝 할 사이에 커다란 나무가 자라더니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주렁주렁 달린 먹음직한 배를 모여든 구경꾼들이 하나씩 나눠가지니 배는 순식간에 모두 동이나버렸다.
배를 다 딴 나무를 삽으로 넘어뜨린 도사는 그것을 어깨에 메고는 휘적휘적 자리를 떠났다.
배 장수도 이 신기한 광경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는데,
이제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아뿔사 자기 수레에 실려 있던 배가 모두 사라지고,
수레마저 부숴져있었다.
그제야 도사의 재주가 모두 자기 배와 수레를 가지고 부린 것이란 걸 깨달았지만,
도사도, 배도, 수레도 이미 사라진 뒤였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한 중국 영화 '적인걸'에 똑같이 등장합니다. ^^)
1편인지, 2편인지, 3편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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