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공학/요재지이(聊齋志異)

[요재지이] 벽화 속의 미인

강인태 2022. 12. 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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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지방 사람인 주효렴은 맹용담과 함께 우연한 기회로 한 사찰에 방문하게 되었다.

절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불당에 있는 탱화에 유독 눈길이 갔는데, 특히 주효렴은 탱화 속에 있는 한 소녀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길게 늘어트린 머리에 꽃을 손에 쥐고 미소를 짓는 것이 마치 자신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처럼 느낀 것.

그렇게 정신없이 탱화 속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주효렴은 갑자기 몸이 떠오르는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자신이 살던 곳과 전혀 다른 풍경의 세상이 펼쳐졌고, 한 노승이 설법하는 것을 들으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모여든 사람들 틈에 끼어 설법을 듣고 있자니, 뒤통수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탱화 속의 그 소녀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

소녀가 몸을 돌려 멀어지니 주효렴의 몸은 자동으로 그녀가 향한 곳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시야에서 사라졌나 싶은 순간이 되면 소녀는 다시 몸을 돌려 주효렴을 향해 꽃을 들어올리며 따라오라는 듯 요염한 미소를 보내곤 했다.

 

결국 두 사람은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조용한 방에 자리잡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일을 마친 소녀는 주효렴에게 아무 소리도 내지말고 숨어 있기를 당부하고는 잠시 사라졌다 밤이 되면 나타나 사랑을 나누는 걸 반복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여자들 한 무리가 물려와 주효렴을 찾아냈고, 소녀를 불러세웠다.

 

"이렇게 하고도 아직 처녀 행세를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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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소녀의 늘어트린 머리를 틀어올려주었다.

머리를 올린 그녀의 모습이 한층 더 요염해지자 주효렴은 또다시 주체할 수 있는 충동을 느끼며 그녀와 끝없는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손쉽게 찾아온 행복이 그리 오래갈 리 없다.

갑자기 누군가의 힘찬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쇠사슬이 철렁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여자는 사색이 되어 주효렴과 함께 바깥을 살폈다.

발소리의 주인공은 얼굴이 새까맣고 금빛 갑옷을 입은 신장이었는데, 그는 모여든 여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혹시라도 인간을 숨기고 있다면 즉시 이실직고 하도록!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주효렴은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여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 아무도 자신을 고발하지 않았다.

머리를 올린 소녀는 주효렴에게 침상 밑에 숨어 있을 것을 권하고 바깥으로 나갔는데, 한번 떠난 소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마음은 갈수록 초조해지고 웅크린 몸은 여기저기 쑤셔오는데, 어디선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주효렴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던 주효렴은 다시 몸이 가벼워지는가 싶더니 풀쩍 뛰어오르며 그림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림 밖으로 빠져나온 주효렴이 주위를 살펴보니 노승이 그를 보며 미소짓고 있고,

같이 온 맹용담은 놀란 기색이 역려했다.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요?"

 

"아- 그게-"

 

맹용담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노승이 여전한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녀오신 게지요."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노승이 대답에 주효렴이 답을 달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환각은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니, 소승이 그 뜻을 해석하는 것은 무리올시다."

 

노승의 말에 주효렴이 탱화를 다시 살펴보니 분명 머리를 늘어뜨렸던 소녀의 모습은 어느새 머리를 올리고 있었다.

 

(일본 만화 백귀야행이나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 같은데서 많이 써먹은 이야기죠. 

그림 속 세상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대상인가 봅니다.

특히나 진경이 아닌 산수화를 주로 그렸던 시절에는 더더욱 그랬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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