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신화/게세르 신화

[게세르 신화] 게세르의 그릇을 시험하는 사르갈 노욘

강인태 2022. 9. 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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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갈 노욘은 먼저 장남인 알탄 샤가이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자신은 소 등에 올라타고, 아들을 걸리면서...

길을 가던 두 사람의 눈에 키큰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는 숲이 들어오자, 아버지는 큰 아들을 향해 물었다.

 

"너는 저 나무들을 어디에 썼으면 좋겠느냐?"

 

아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올타리를 쌓아 가축을 기를 수 있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아들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채 사르갈 노욘은 황소의 걸음을 재촉했다.

 

이번엔 두 사람의 눈에 드넓은 초원이 들어왔다.

 

"저 초원에서는 뭘 하면 좋을까?"

 

아들은 곡식을 심겠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 한마리가 덤불에서 날아오르며 사르갈 노욘이 타고 있던 소를 놀래켰다.

노인은 맥없이 땅에 떨어져버렸고, 놀란 아들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참을 울던 큰 아들은 체념하며 아버지의 시신을 남겨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사르갈 노욘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혀를 끌끌 찼다.

 

"곧 전운이 드리울텐데 저런 한가한 소리나 하다니 내 자리를 이어받을 그릇이 아니구나..."

 

다음날 차남은 문겐 샤가이를 데리고 길을 떠난 사르갈 노욘은 차남에게서도 장남은 알탄 샤가이와 똑같은 답만 얻을 뿐이었다.

역시나 죽은 척 하는 아버지를 버려두고 차남이 떠나자, 노인은 일어나 또 한번 혀를 끌끌 찼다.

 

"이제 곧 운명의 시간이 되면, 적들이 우리 땅을 유린하려 들고 이제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큰 전쟁이 일어날텐데, 저런 한가한 소리나 하다니..."

 

사르갈 노욘은 이제 마지막 남은 희망인 양자인 세째 뉴르가이(게세르, 벨리그테)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숲이 눈에 들어오자 사르갈 노욘은 뉴르가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늘 호방한 성격이었던 뉴르가이의 대답은 형들과 사뭇 달랐다.

 

"마을 짓고, 그 주위에 성을 높게 쌓는데 저 나무들을 쓰겠습니다.

적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대비를 해야지요."

 

말없이 가던 길을 계속 가던 아버지는 초원에 이르러서도 형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서는 전투를 벌이겠습니다.

그러면 적들이 흘린 피로 초원이 물들 것이고, 그러면 다른 적들은 그것을 보고 겁을 먹을 것입니다."

 

어린 뉴르가이의 호전적인 대답은 간담을 서늘케 했다.

사르갈 노욘은 또다시 덤불에서 날아오른 새에 놀란 척 소 등에서 떨어졌다.

아버지를 깨우기 위해서 재삼, 재사 울부짖던 뉴르가이는 초원의 정착민들에게 달려가 채찍으로 위협하며 소리쳤다.

 

"당신들이 이곳에 땅을 갈고 곡식을 심지 않았다면 새가 날아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내 아버지가 새에 놀라 땅에 떨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불행한 사태는 모두 당신들 책임인 셈이다.

아버지의 장례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당신들이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정말 억지스런 호통이다. ㅠㅠ) 

 

하지만 이 호통에 정창민들은 장례를 위한 관과 망자를 위한 비단옷을 준비해야만 했다.

아버지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관에 넣은 뉴르가이는 장작 더미에 불을 지피고는 그 위에 아버지를 눕혔다.

사르갈 노욘은 그제서야 비명을 지르며 장작 더미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뉴르가이는 단호했다.

 

"망자가 이 세상으로 돌아오면 재앙이 닥친다."

 

그는 아버지를 들어 다시 불타는 장작 더미 위로 던져버렸다.

그러나 사르갈 노욘은 울먹이며 양아들에게 사정했다.

 

"한번만 봐다오. 다시는 너를 시험하지 않으마."

 

둘은 다시 집으로 향했고, 앞서가는 늘름한 막내를 쳐다보는 사르갈 노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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