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공학/201 소설 작법

[소설 작법] 관점 선택 1/5 - 전지적 권한(Omniscient Power)

강인태 2021. 11. 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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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에 대한 구상이 끝나고 막상 글을 써내려가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이 문제부터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점의 선택...

"도대체 누구의 시선, 누구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갈 것인가?"

무턱대고 써내려갔다가는 정해진 관점이 없이 모든 등장인물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독자나 관객을 혼란에 빠트리거나, 뻔하고 촌스러운 작품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관점을 정했더라도, 그 선택이 잘못되면 보는 이의 감정이입의 정도나 몰입도를 떨어트리게 되죠.

 

관점을 잘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가의 전지적 권한(Omniscient Power)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전지적 권한은 독자나 관객에게 스토리를 보다 잘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등장인물, 환경, 사건 등에 대해서 어떤 정보를 작가가 직접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군가의 입, 즉 화자의 입이나 생각을 통하지 않고 말이죠.

 

예를 들어..

<비가 내리는 어느 봄날이었다.>라고 쓰면, 그것은 화자가 없이 작가가 독자에게 바로 사건이 전개될 환경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죠.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누군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등장인물이 과거에 겪었던 어떤 사건을.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든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다든가 하는 것을

전달할 때 화자의 입에서 나온 직접적인 말이나, 표정에 대한 묘사의 수준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작가가 전지적 권한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지적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관건일 텐데...

피츠제럴드는 그것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느냐? 非제한적으로 사용하느냐로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점의 선택은 이 전지적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자연스러운 가이드라인이 되어줍니다.

예를 들어 작가가 일인칭 작품을 쓴다고 한다면

작품에서 화자가 직접 오감을 통해 관찰하거나 추론할 수 있는 것들만 서술하고 묘사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화자의 시야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제외되어야겠죠.

그렇다면 당연히 거기에 맞도록 작가는 아주 제한적인 전지적 권한을 사용해야만 할 것입니다.

 

관점을 가장 크게 나눈다면 일인칭과 삼인칭으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 나(우리)는 영화를 봤다.

- 그(들)은 영화를 봤다.

 

관점을 선택하는데 있어 작가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할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 일인칭과 삼인칭 중 어느 관점이 더 적합한가?"

라는 질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작가의 전지적 권한은 매우 제한됩니다.

삼인칭을 채택한다면 전지적 권한은 사용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따라서 일인칭이란 관점은 어찌보면 전지적 권한의 사용을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기법인 셈이죠.

그래서 많은 작가들의 처녀작은 일인칭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어떤 작품이 갖추어야할 문법적 오류를 가장 쉽게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런 탓인지 저도 첫 작품에서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할 때는 일인칭을 사용했습니다.

내가 볼 수 없고, 알아낼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제하며 관점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여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역사물이나 판타지 작품을 쓸 때는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서술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작가 자신이 그 이야기의 환경을 체득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고려 시대의 이야기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세계에서의 이야기를 하는데,

'나'가 화자가 되어버리면 그것을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더구나 독자의 관점에서도 작가가 그 시대나 그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더더욱 어렵습니다.

따라서 문법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역사물이나 판타지를 쓸려면 삼인칭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예외는 항상 있게 마련이지만...

 

이렇게 일인칭을 이용하는 것은 문법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소설은 삼인칭을 사용하죠.

또 예외적으로 일인칭과 삼인칭을 모두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관점을 더 세분화해서 살펴보고, 그것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작가의 전지적 권한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죠.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전지적 권한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작품 전체에 걸쳐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부분에서 제한된 전지적 권한을 사용하다가, 다른데서는 비제한적인 전지적 권한을 사용하면 안된다는 이야기죠.

이것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다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먼저 필요합니다.

 

"나는 한 명의 작중인물의 사고와 감정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명의 사고와 가정을 사용할 것인가?"

 

사실 어떤 사람의 사고와 감정이란 것은 그 사람이 아니면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죠.

결국 작가가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전지적 권한을 사용하는 것인데,

그것을 한 사람에게만 적용할 것인지, 작품에 등장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적용할 것인지,

심지어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소위 '전지적 작가 시점'은 한동안(1950 ~ 2000년쯤?) 가능한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금기처럼 되어버렸지만-

지금은 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로판이란 장르가 대세가 된 지금에는 오히려 전지적 시점을 사용한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어쩌면 시점이나 관점을 철저하게 지키는 딱딱한 자세가 오히려 촌스러워지는 상황이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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