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지난 몇 년 간 컨텐츠 업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이름이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강력한 플레이어에 대해서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는데, 최근 들어 조금씩 다른 전망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디즈니, HBO 같은 강력한 컨텐츠 제작사들이 독자적인 OTT 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선언한데 이어, 디바이스 간의 연결성과 충성스런 고객들을 기반으로 적당히(?) 출시될 줄 알았던 애플 TV+가 오리지널 컨텐츠 확보에 7조 원이 넘는 돈을 쓰겠다고 선언했죠. (넷플릭스가 올해 오리지널 컨텐츠 확보에 쓰겠다고 한 돈이 8조 원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더구나 디즈니도, 애플도 넷플릭스보다 훨씬 저렴한 6.99$와 4.99$를 한 달 정액제 요금으로 책정해버렸으니-
이런 상황이니 슬슬 넷플릭스 위기설이 나올 법도 하죠.
"이제 진짜 경쟁자가 생겼네."
"디즈니 컨텐츠 다 빠지면 넷플릭스를 왜 보냐?"
"애플의 오리지널은 왠지 더 참신할 것 같지 않아?"
등등.
하지만 오늘은 뭐 볼까를 찾는 일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있는 제 입장에서는 이런 우려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과연 디즈니 플러스를 보기 위해서, 혹은 애플 TV+를 보기 위해서 넷플릭스를 떠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가격, 즉 고개의 지불 의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한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넷플릭스 덕분에 코드 커팅(Cord-Cutting), 즉 유료 방송을 해지해버린 사용자가 11%나 된다고 합니다. 미국의 유료방송 가격은 한국에 비해 훨씬 비싸서 오만 원 정도라고 하니, 사람들은 집에서 눈과 귀가 즐겁기 위해서 오만 원 정도는 기꺼이 내고 있었다는 뜻이죠.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디즈니와 애플의 컨텐츠를 보기 위해서 넷플릭스를 떠날까요? 아니면 넷플릭스도 보고, 디즈니도 보고, 애플도 볼까요? 저라면 후자를 선택할 겁니다. 셋 다 선택해도 이만 원 남짓인 걸요?
이런 상황에서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 TV+의 출시를 걱정해야 할 사람은 넷플릭스가 아니라, 오히려 유료방송 업자일 겁니다. 소위 말하는 코드 커팅이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컨텐츠 구색입니다.
플릭스를 즐겨보는 사람에게 디즈니의 컨텐츠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요? 당연히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없다고 넷플릭스를 떠나기에는 남아 있는 컨텐츠가 너무 많습니다.
사실 제가 넷플릭스를 이용하게 된 건 '해피 밸리'라는 조그만(?) 드라마였습니다.
몽크, 멘탈리스트, 미디엄, 콜드 케이스 등 몇 년 동안 즐겨보던 미드 수사물들이 하나, 둘 막을 내린 데다, 약간 틀에 박힌 미드의 공식에 살짝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탓에
"뭐 좀 참신한 볼 거 없나?"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찾아보다 얻어걸린 드라마의 제목이 '해피 밸리'였습니다. 덩치 좋은 영국 아줌마 경찰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국의 작은 드라마죠. (사실 '해피 밸리'는 소위 넷플릭스 오리지널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해피 밸리'를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넷플릭스에 가입하고, 자동 결제를 위해 카드 번호를 입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놈이 웹하드 세상에도, 토렌트 세상에도 없더라고요 ㅠ.ㅠ) 그리고 마지막 ok 버튼을 누르는 순간 새로운 컨텐츠 세상이 열렸죠.
"이건 뭐지? 지금까지 나왔던 VOD 서비스와는 차원이 다르잖아. 그래 이 정도면 컨텐츠 플랫폼이라고 부를 만하지." 라며 넷플릭스의 세계로 빠져든 게 2년쯤 전이네요. 그리고 이어진 멋진 이야기들, 오자크, 기묘한 이야기, 데어데블, 햄록 그로브, 스웜프, ...
저는 넷플릭스의 진정한 힘은 몇 개의 강력한 제휴사들의 컨텐츠도, 트렌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거들뿐, 넷플릭스의 진짜 힘은 파도 파도 또 나올 것 같은 거대한 컨텐츠 광맥에 있다고 봅니다. 거기에 더해 광산 안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큐레이션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 뭘 하나 재밌게 보고 나면 내가 좋아할 것 같은 것들을 기가 막히게 잘 추천해줍니다.(물론 이 광맥도 시간이 지나면 좀 아쉽긴 하지만...)
이 두 가지 이유로 저는 디즈니나 애플의 OTT 서비스 출시가 넷플릭스의 위기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가 언젠가 위기를 겪는다면 다른 이유에서겠죠. 전혀 다른 형태의 컨텐츠 플랫폼 출시에 의해서일 텐데,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해보죠.) 오히려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 TV+의 출시가 OTT 전성기를 더 앞당겨서,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파이를 만들고 넷플릭스는 여전히 가장 큰 조각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넷플릭스도 더 좋아진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어떻게 더 좋아지냐고요? 거기에 대해서는 바로 이어지는 글에서 '넷플릭스에 바란다'는 제목으로 해볼까 합니다.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82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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